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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Oct 04.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7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3

또 하나의 주요 가설에 따르면, 빅뱅 이전에는 우주와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갑자기 생겨났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우주가 실제로 무에서 탄생했으며, 플랑크 크기처럼 아주 작지만 유한한 크기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양자 중력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다. 하지만 빅뱅 당시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가 가장 작은 크기였던 순간 '이전'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탄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탄생이라는 개념도 시간에 따른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호킹이 “우주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 우주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 인간이 가진 경험의 한계로는 이처럼 시간이 없었을 때도 우주가 존재했다는 개념을 헤아리기 어렵다. 이 개념을 설명할 만한 언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말하는 거의 모든 문장에는 그저 그 이전과 이후에 관한 몇몇 생각이 들어 있을 뿐이다.


우주가 무에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최초로 제안한 양자 우주론자는 알렉산더 빌렌킨이다. 그는 현재 보스턴 근교에 있는 터프츠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빌렌킨은 다른 물리학자들과 달리, 농담하는 일이 별로 없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t=0 순간의 우주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매우 심오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양자 터널 quantum tunneling “로 우주를 만들어내는 데 원인은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물리 법칙은 존재해야 하지요.”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곳'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43-45 쪽)

빅뱅이 일종의 우주 폭발에 따른 팽창이라면 이 시점을 대칭적으로 사유하면 빅뱅 이전에 수축과 우주 응축이 있었고, 이를 마이너스 시간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생각은 추측에 불가하지 이론적, 경험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


실제로 현대의 양자 물리학자들은 빅뱅이나 그 이전의 상태를 설명한 마땅한 개념이나 용어 또는 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시간의 역사’를 서술한 호킹도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작도 끝도 없고 그저 우주는 그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불교적으로 설명하면 시간 이전의 우주의 실상은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며, 불구부정하다.(반야심경 참조)” 고대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사유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사유는 칸트의 말과는 반대로 경험의 한계를 초월해서 우주의 본질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편 우주의 기원을 기독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서 빌렐킨이란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를 소개한다. 그는 우리의 ‘우주가 무에서 탄생했다(Creatio ex nihilo)’는 기독교적 신념을 가설로 제시한다. 그리고 시공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을 양자터널 이론으로 이야기한다.

또 물리 법칙은 어떻게 '그곳'에 이를 수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빌렌킨은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길 좋아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면서 시간도 창조했기 때문에 '이전'은 없으며 '그때'도 없다고 답했다.


빌렌킨은 '양자 터널'에 대해 말하면서, 양자 중력에서는 산 앞에 있던 물체가 산 정상에 오르지 않고도 산을 통과하거나 갑자기 산 반대편에 나타나는 마술 같은 신기한 현상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비한 능력은 실험실에서 확인된 것으로, 아원자 입자들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하는 듯이 행동하는 현상에 따른 것이었다.


양자 터널 현상은 입자 크기의 작은 세계에서는 흔하지만,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현상의 원인에 관해 설명하는 것도 무척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t=0에 매우 가까운 그 순간, 그 우주의 양자시기에 우주 전체 크기는 아원자 입자만큼 작았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양자 안갯속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따옴표를 써서 갑자기'라고 적은 이유는 그때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적으면서 내가 '않다'의 과거형인 '않았다'를 사용했다는 걸 지금 또 깨달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거스틴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유대-기독교의 신, 창세기 1장 1절의 신(엘로힘:전능자)에 의해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선언했을 때 당시의 이교도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창조 이전에 과연 그 신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 11권 영원과 시간 13장에서 창조 이전에 시간이란 없다고 논증한다. 현대 물리학적 시각으로 보면 시간은 공간의존적이니, 공간의 제한이 없다면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실제로 현실 속에도 존재한다.


이런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 것은 바로 아원자 세계에서 실험되고 관찰된 양자터널링, 즉 터널 효과였다. 터널 효과(tunnel effect) 또는 터널링(tunneling)은 양자 역학에서 원자핵을 구성하는 핵자가 그것을 묶어 놓은 핵력의 포텐셜 장벽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도 확률적으로 원자 밖으로 튀어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위키백과 참조)


이 현상의 결과는 이미 주사 터너링 현미경에 의해 반도체 칩의 나노공정에 활용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고전역학에서 산이라는 장벽을 넘어가려면 올라가던가 터널을 뚫던가 해야 하는데, 양자 터널링은 터널을 뚫지 않고 전자가 진공의 에너지 장벽을 꿰뚫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상세한 것은 이 분야의 전공 물리학자의 물리학 강의 영상을 검색해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포인트는 시간의 역사 이후에도 상식적 시공 관념을 넘어선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고, 그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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