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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Oct 14.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8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4

우주 전체가 아원자 입자만큼 작았으며, 양자의 신비로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샌타바버라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대표적인 양자 우주론자 제임스 하틀은 스티븐 호킹과 함께 빅뱅 순간과 근접한 양자 시기 '속'에 있는 우주 모델을 가장 세밀하게 발전시킨 학자다. 하틀과 호킹의 방정식에 의하면 시간은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하틀과 호킹은 양자물리를 이용하여 우주의 특정 순간들이 일어난 확률을 계산해 냈다.


하틀은 본인이 양자 이론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양자물리를 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일은 당혹스러울 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수수께끼입니다." 우주의 상태가 단 하나뿐이라면 양자 역학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가지 조건의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어째서 우리 우주의 조건을 대체할만한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더불어, 그 다양한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는 다른 우주들이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일까?


양자 우주론자들은 그들의 연구로 인해 파생될 엄청난 철학적, 이론적 논란들에 관해 잘 알고 있다. 호킹이 자신의 저서 ’ 시간의 역사‘에서 언급한 대로, 자연의 법칙에 따른 우주의 진화를 허락하고, 시간의 시작과 그 작동 원리를 만들어낸 존재는 오직 신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킹은 자신의 이론을 통해 우주가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는지 설명해 준다. 그는 우주의 ‘초기’에 일어난 일들을 계산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우주가 존재하는 데 있어 우주 자체 외에 그 어떤 '초기 조건'이나 경계선 같은 추가적인 요소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양자물리학의 단단한 법칙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호킹은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창조자를 위한 자리는 어딘가? “


물론, 사람들은 양자 우주론자들 대부분이 무신론자일 거라 여긴다. 대다수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그 대표적인 예외 인물이 바로 앨버타대학교의 양자 우주론자이자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인 돈 페이지이다.


페이지는 수학 계산의 달인이기도 하다. 최근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해 낸 누군가가 우주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진정한 창조자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페이지는 숀 캐럴이 운영하는 블로그(엉뚱한 우주라고 불리는)의 게스트 칼럼에서도 과학자인 동시에 유신론자임을 보여주듯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모든 만물)에 신을 포함시키면, 우주에 관한 이론이 더욱 복잡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신은 우주보다 훨씬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이 우주 그 자체보단 신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봐야 세상을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47-50 쪽)

우주의 시작이자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빅뱅이란 특이점이 형성되고 발생하기 위한 조건으로 어떤 외적 요인 혹은 신의 존재가 전제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많은 유신론자들의 신앙과 관련된 물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자 물리학자 특히 호킹이나 하틀과 같은 학자는 빅뱅 사건의 성립 조건으로서 신의 존재를 가정할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다고 단언한다. 반 평생 이상을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던 호킹에게는 물리학적 근거가 빈약한 신 존재에 의존할 수 없았다는 사실은 신앙이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는 근대 신학자 슐라이마허의 정의를 깨트리는 것이었다.


물론 양자 물리학자 중에서도 기독교 유신론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의 친구 물리학자 숀 캐럴의 설명을 소개한다. 그는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신은 아주 단순한 존재이기에 신에 의해서 빅뱅이 시작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우주의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리하다고 본다.


마치 고대 철학자 플로티노스가 만물은 일자( 一者)에서 유출(流出)되었다고 설명하듯이 하나에서 다구가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하나의 수학적 공리에서 연역을 통해 다수의 정리를 도출하는 것처럼 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고전 역학을 지탱하던 인과율이 양자 역학에서는 확률로 대체되고 만다는 사실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현저히 많은 대다수 양자 우주론자는 우주가 무언가로 인해 탄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빌렌킨이 내게 말했듯, 양자물리학을 이용하면 원인 없이 바로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양자물리의 세계에서 전자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원자의 궤도를 옮겨 다니듯이 말이다.


양자 세계에서 정확한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현상은 없다. 오직 확률만 있을 뿐이다. 캐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원인과 결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야 할 이유는 없지요. 나는'그건 원래부터 그렇다'라고 말하는 일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상태를 다룬다는 생각은 과학의 오랜 결실에 맹렬히 대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 년간 모든 현상에 대해 앞선 사건에 대한 논리적 결과로 설명해 오며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페이지 박사는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론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뚜렷이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주 속에서 인과관계는 필수요소가 아닙니다. 인과관계는 그저 우리의 경험에서 파생된 대략적인 개념에 불과합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우리의 두뇌 또는 과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벽에 부딪혔다. 인과관계라는 단단한 기반에 금이 갔고, 철학과 종교, 윤리 등 다양한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과관계를 엄격히 따지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책임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은 무척 정교하고 복잡한 정신적 과정이다. 만일 인과관계가 그저 대략적인 개념일 뿐이라면, 어떠한 결정이 명확한 원인 없이 내려지는 등 너무 허술해지고, 그 임계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양자 우주론은 우리가 별로 묻지 않는, 실재와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에 관한 질문들을 던진다. 하늘을 보자. 저 우주는 영원히, 무한하게 계속될까? 아니면, 유한하지만 구체의 표면처럼 경계나 한계가 없는 것일까? 둘 다 불완전하며, 불가해한 질문이다. 우리 태양과 지구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곧 우리는 세상의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제한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원자와 별 사이에 끼인 채, 육체적 능력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작은 일부, 실재의 얇은 단편에 불과하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사치인 동시에 인간의 필연적 욕구이기도 하다.(50-54 쪽)

우주의 기초 법칙이 인과율에서 확률론으로 바뀐다면 이제까지 인간의 모든 우주론과 인생론 나아가 가치론마저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은 모두 인과율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절대적이지 않다면, 과연 우주와 인간, 사회의 질서는 어떻게 파악되고 규정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에서 죽을 수도 있다, 즉 죽을 확률이 높다는 명제의 차이는 무엇이며, 이 차이 혹은 간극은 어떤 현상을 확률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가 의존해야 할 법칙이 단지 확률에 의한 예측이라면 양자컴퓨팅이 가능해도 그것을 신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차피 팔자소관이고, 운에 따를 뿐 성공의 법칙도 불행의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단지 확률만 있다면 우주의 기초 나아가 인생의 기초도 돌에 지은 집이 아니라 언젠가 지진이나 홍수에 무너질 집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럴까? 좀 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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