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불평등
이 시리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평등>이란 책을 요약, 정리, 해설한 에세이로 구성될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옥스퍼드에서 '자본론의 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좌파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 특히 심화되어 가는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학자이기도 하다.
그 역시 현대의 많은 좌파 사상가들처럼 과거에 이미 실패한 서구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주장하듯이 <폭력혁명>에 의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그런 몽상적 혁명가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선 수정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국의 사회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이론적으로 반박하는 데 일차적 관심을 가진다. 롤스의 정의론이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현실의 데이터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1장에서 그는 유엔개발계획이 발행하는 <인간 개발 보고서>의 통계를 제시한다. 1999년도의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부유한 20퍼센트의 소득과 가장 가난한 20퍼센트의 소득 격차가 1960년에는 30배였는데 1990년에는 60배로 벌어졌다. 그리고 1997년에는 74배로 더 벌어졌다.
그 보고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세계 최고 부자들의 재산 증가를 보여주는 도표이다. 1994년과 1998년 사이에 세계 최고 부자 200여 명의 순자산은 4400억 달러에서 1조 420억 달러(세계 인구의 41퍼센트의 소득)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빌 게이츠, 월턴 가문, 브루나이 국왕의 자산을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36개국의 국민소득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불평등은 이제 지구적 문제이다. 세계 각국 내 불평등도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불평등은 사상 최대 수준이어서 가장 부유한 20퍼센트의 소득이 가장 가난한 20퍼센트보다 11배나 많다. 빈부 격차는 선진국 내에서도 커져왔다. OECD의 19개국 중에서 1990년대 초에 소득 불평등이 감소한 나라는 단 하나뿐이었다.
평등이나 불평등은 분명히 상대적 개념이다. 과거에 비하면 현대의 모든 사회는 더 평등하다. 그러나 사회 내부로 보면 불평등은 확실히 심화되고 있다. 캘리니코스는 <빈곤의 개념> 역시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의 빈곤층은 과거의 하류 계층에 비해 덜 빈곤하다. 그들은 세탁기와 휴대폰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빈곤하다.
근대화된 한국 사회 역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상대 빈곤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 빈곤의 격차가 인간의 한정된 재능이나 노력 혹은 운과 기회만으로는 극복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은 부유세를 더 증세한다고, 그리고 법인세를 더 늘인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1은 <정치경제학비판>이란 제목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오랫동안 정치와 경제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정치는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다. 토마 피게티의 신작에 <자본과 이데올로기>란 제목을 붙인 것은 바로 그의 목표가 <21세기 자본> 이후 현실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련성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문명이 건설된 이후 권력 투쟁과 이념 투쟁은 병행되어 왔다. 신화와 신화가 출동하고, 신학과 신학 그리고 형이상학과 형이상학이 대립하며, 정치학과 정치학비판이 권력의 시녀 혹은 비판자 또는 미래의 이정표가 되어왔다. 오늘날에는 정치경제학 비판 혹은 정치경제철학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시대에 과연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그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