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자료 수집, 글쓰기, 투고, pod 출판(3)
에드워드 윌슨이 간과한 몇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우주 물리학과 뇌 과학 분야의 획기적 발전과 성과에 대한 자료였다. 생물학자였던 그는 생명의 진화 중에서도 개미라는 곤충집단이나 그 밖의 사회성을 가진 생명체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연구하였기에, 그의 연구는 주로 앞에서 언급한 빅 파이브 분야와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주제를 성경이란 고전 중에서도 창세기, 특히 창세기 1장의 서사에 대한 현대적 접근으로 테마를 정한 이상, 태초라는 시점에 대한 현대의 우주물리학적 연구를 토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인슈타인 이후 우주물리학은 양자역학과 더불어 엄청난 업적들을 산출하였는데, 그 중심에 스티븐 호킹이 있었다.
그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비교적 쉽게 서술한 <시간의 역사>란 책은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은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무려 237주간이나 자리를 지켰다.성서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의 남녀노소를 모두 포함해서 759명당 한 권꼴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호킹이 분석하기에 그런 성공을 거둔 것은 인간이 다음과 같은 근원적 물음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가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현대인은 이런 물음에 대하여 수천 년 간 의지했던 전통 종교에서 더 이상 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호킹의 물리학 책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열광한 것이었다.
호킹은 1988년에 발간된 초판을 최신 내용으로 구성하고, '벌레구멍과 시간여행'이란 새로운 장을 덧붙이고, 1996년 5월에 새로운 판을 재발간하였다. 한국에서는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란 제목으로 1998년부터 2015년까지 24쇄나 발행되었다. 서문에서 호킹은 '창조의 지문(指紋)'이란 흥미로운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은 코비라고 불리는 우주배경복사 탐사위성을 비롯한 여러 공동 연구에서 발견한 우주배경복사의 요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후에 이 요동은 소위 <양자요동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창세기의 인문학>이란 필자의 책 3부에 나오는 '태초에 진공이 있었다'는 제목의 장은 바로 이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시간의 역사>에서 호킹은 현대에 이르는 우주론의 여러 가지 변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수천 년간 기독교에서 <창세기 해석>의 기준이 되어온 어거스틴의 <고백론>은 '시간과 영원'이란 장으로 창세기 해석을 시도한다. 어거스틴 역시 창조 혹은 태초를 시간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으로 본 것이다. 어거스틴과 호킹은 외견 상 <태초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유신론자이고, 호킹은 무신론자이다. 우리 현대인은 종교와 과학의 역설적 일치와 혹은 명백한 불일치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보수적인 기독교 신학자들과 일부 과학자들은 다수의 무신론적 과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대중들은 신학자들의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현대 신학자들에겐 대세이지만, 여기에 대하여서도 열심히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논쟁을 제기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폴킹혼은 <양자물리학과 신학: 뜻밖의 인연>이란 책으로 보수 신앙에 대한 물리학적 변증을 하였지만, 물리학자도 신학자도 아닌 내가 봐도 <억지 춘향: 어떤 일을 억지로 겨우 이루어 내는 한국식 비유>처럼 보인다.
<시간의 역사>와 연관된 현대의 우주 물리학이나 양자 역학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한 다음, 나는 <빅히스토리>가 안내하는 우주 역사의 다음 임계점, 태양계의 탄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대략 137-8 억년 전, 빅뱅이란 특이점 이후 지금의 우주가 탄생하고, 약 46억 년 전쯤 우주의 거대한 분자구름의 일부분이 중력 붕괴를 일으키며 태양계가 형성되었다. <창세기>의 문자적 기록과는 달리 지구가 먼저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태양이 먼저 창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