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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Aug 10. 2024

창세기의 인문학 9

초기 인류와 종교의 기원

미국의 정신의학자 E. 풀러 토리(1937-)는『뇌의 진화, 신의 출현』이란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책에서 인간의 뇌 중심적 진화론의 전제 하에, 신과 종교의 기원에 대하여 정신의학적 설명을 한다. 현대의 신경생리학자나 진화생물학자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뇌가 진화하면서, 종교와 신의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초기 문명 역시 이런 영향 속에서 건설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의 이론도 존재한다. 토리의 이야기를 참조해 보자.


10-7만 년 전쯤 현인류에게 <인지 혁명>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후 인간은 자의식을 가지게 되고, 시간 의식을 가지며, 소위 자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기억을 서서히 발전시키면서 현행 인류는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6-4만 년 전부터 그들은 자기 생각을 성찰할 수 있었으므로 무한, 영원, 삶의 의미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타인의 죽음과 자신의 꿈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적 개념이 생겨났다.


『사피엔스』란 책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1976-)는 약 7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무작위적이고 갑작스러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서 사피엔스의 뇌가 재배선 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새로운 종류의 인지 능력-추상적 사고와 언어 능력-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최근에 나온 증거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처럼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하라리가 말한 핵심 변이가 두 종의 공통 조상에서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하라리는 유대인 학자답게 이러한 인지 혁명을 『창세기』 2장의 서사를 인용하여  <지식나무의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창세기 2장의 이야기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선악을 알 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 17)”

창세기 4장에는 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의 후손인 가인과 아벨이 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창 4:3)"


지식나무의 돌연변이 가설을 적용하면, 이 나무를 먹고 추방된 인간의 첫 후손인 가인(Cain: 획득과 소유의 의미)과 아벨(Abel: 호흡과 공허의 의미)이 각기 자신들의 생산물을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삼았다는 것은 종교의 발생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라고 볼 수 있다. 왜 신이 아벨의 제물을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으나 어느 것도 정답으로 인정된 것은 없다.


토리가 제시하는 <종교의 기원에 관한 학문적 이론들>을 대략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뇌 진화 이론: 인간 뇌의 진화는 인지 혁명과 농업혁명으로 이어졌고,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가 진행되자 세속 권력들은 규칙과 법률을 제정했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 도시 국가들의 제신들을 고안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가 출현하고, 종교는 공동체의 법, 경제, 정치, 사회적 필요에 신의 권위, 왕의 권위를 부여했다. 2) 사회적 이론: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신과 종교의 기원이 영혼과 꿈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제도에 있다고 보았다. “종교의 핵심 가치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충성을 고취하고 갱신하는 의례에 있다.”


3) 친사회적 행동이론: 이 이론의 핵심은 신들이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 즉 하늘의 눈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관점이다. 즉 종교는 특정 사회질서를 영속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신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4) 심리적 이론과 위안 이론: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려는 무의식적 욕구에서 아버지 상으로서 신을 창조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을 통해 이 갈등을 해소하면 종교의 욕구를 더 이상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들은 종교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마주할 때, 뇌를 진정시키는 수단이 된다고 한다. 종교의식은 신체를 이완시킨다.


5) 패턴 추구 이론: 종교는 심리적 위안뿐만 아니라 지적, 인지적 위안도 준다. 종교는 체계적인 의인화, 즉 사물이나 사건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의인화는 종교적 경험의 핵심이다. 종교는 그것의 가장 체계적 형태이다.” 6) 신경학적 이론: 관자엽간질 환자들이 발작 중에 하나님을 보는 등의 신비적 체험을 한다는 사례에서 추론하여, 종교가 주로 두뇌의 관자엽과 관련된 현상으로 본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마이클 퍼신저는 “신 체험(God experience)은 정상적이고 좀 더 조직적인 패턴의 관자엽 활동이며, 개인적 스트레스, 연인의 상실, 예상되는 죽음의 딜레마 등 미묘한 심리적 요인으로 촉발되는 소규모의 발작이라고 주장했다.  


7) 유전학적 이론: 쌍둥이의 연구 사례에서 “종교적 독실성의 정도에 유전적 요인이 20퍼센트 정도 기여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일란성, 이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는 “유전이 종교성에 미치는 영향이 50프로"라고 발표했다.  8) 신은 진화의 산물인가? 부산물인가?:


신의 기원 이론과 관련된 마지막 의문은 이것이다. 신의 출현은 진화적 적용에 해당하며 진화적으로 유리했을까? 아니면 진화의 부산물인 “원시적 마음의 잔존물”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은 뜨겁게 진행 중이며, 다수는 적용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즉 신이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과연 신은 뇌의 진화에 따른 결과물일까? 그렇다면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가 예언한 것처럼 인류의 정신은 신학적 단계(모든 현상은 신에 의한 것이라 생각함)와 형이상학적 단계(여러 현상은 본질이나 본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해 설명됨)를 거쳐 이제 실증적 단계(진정으로 참다운 지식의 단계)에 도달한 것인가?


그렇게도 실증적 지식(참된 지식)을 많이 가진 이 시대에도,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이 모먕이고, 사람들은 왜 여전히 그 꼴인가? 신석기시대의 사회 구조와 인간의 본성이 달라진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창세기의 인문학>은 이런 본질적 화두(話頭)를 가지고 출발하여, 이 화두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이런 고민에 공감하는 자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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