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된다
소제목으로 붙인 이 문장은 루마니아의 세계적 종교사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가 그의 주저 『세계종교사상사 1』의 16장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편을 서술하면서 시작되는 대목이다. 이 말은 미국의 고대 근동학자인 사무엘 노아 크래머(Samuel Noah Kramer (1897 –1990)가 자신의 책에 붙인 제목이기도 한다.
크래머는 그 책에서 인간의 종교 제도와 종교적 기법 그리고 그와 관련된 수많은 지식들이 수메르 텍스트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문헌들은 최초의 기록 문서로서, 그 원문은 BC 30-2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수메르 문명의 기원과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수메르 문명을 만든 사람은 셈 어족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수메르어를 사용하였으며, 메소포타미아의 북쪽에서 남부의 저지대로 내려와 그곳에 정착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이 맞다면, 수메르인들은 <에덴>이란 이상향을 아프리카가 아니라 자신들이 정착한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 두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어느 곳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시리아 사막에서 셈 어족에 속하는 아카드어(lišānum: 셈어의 일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특히 아시리아인과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쓰임 )를 사용하는 유목민족이 수메르의 도시를 정복하였고, BC. 3000년대의 중엽, 전설의 지도자 사르곤(Akkadian Šarru-kinu, 아카드의 사르곤)은 수메르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고 아카드 제국을 설립하였다.
아카드 제국(마트 아카디, Akkadian Empire)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이자 인류 최초의 제국으로 여겨진다. 아카드 제국 시기는 기원전 2324년 무렵부터 2154년까지 약 2백여 년으로 추측된다. 제국은 빠르게 수메르의 문화를 흡수하고, 그 이전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국가들의 기원 신화를 통합하여, 지배자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아카드 시대에서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 신화는 최초의 인간이 식물처럼 땅에서 돋아났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는 어떤 직공신(職工神)이 진흙으로 사람의 모습을 빚고, 남무 여신이 심장을 만들고 엔키 신이 생명을 부여했다고 한다. 다른 신화는 인간 창조자로서 아루루(Aruru) 여신을 언급한다. 네 번째 전승에 의하면 인간의 창조는 그것을 위해 희생된 라그마(Lagma) 신의 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대 신화는 신들의 계보와 전쟁에 대한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신들은 고대 지배자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로운 신들이 과거의 신들을 제압하고, 새로운 신들의 질서를 천상에 구축한다. 대개의 신화에서 인간의 창조는 신들 전쟁의 부산물이다.
창세기는 이런 서사적 플롯과 전혀 다르다. 우주 창조의 목적은 인간의 창조에서 완성된다. 엘로힘이란유일신의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된 그의 형상인 인간에게 고귀한 위임이 부여된다. 대부분의 기원 신화가 <고역사적 사건의 상징적 비유>라면, 창세기는 <원역사적 사실에 대한 계시적 비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