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Aug 23. 2024

창세기의 인문학 14

영웅과 제국 그리고 바벨론(2)

고대 제국의 창건자는 대개의 경우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단순한 정복자였고 어떤 이는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혁명가였다. 역사적으로 정복자이자 동시에 혁명가였던 영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고대 근동의 제국사를 보면 아카드 제국의 설립자 사르곤 대왕은 정복자 왕이었고,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키루스 2세는 혁명가 왕이었다.


구약 성서에 고레스 왕이라고 언급된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는 여러모로 다른 제국의 건립자와는 다른 특별한 교육을 통해 성장하였는데, 키루스의 교육 과정을 상세히 저술한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이 쓴 [키로파에디아]이다. 키루스 1세의 손자이자 캄비세스 1세의 아들인 그는 친부에게서 진정한 리더십을 배우게 된다.


캄비세스 1세는 키루스 2세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단순히 우수한 전략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일이 우선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자발적 복종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보다 지혜롭다고 인정받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키루스 2세는 군대를 재편성하면서 사병이 그가 올린 전공에 맞게 승진하는 길을 열어주어서, 현대식으로 말하면 <기회균등의 법칙>을 자신의 군대에 적용한다.


키루스 대왕의 이런 사고는 귀족이나 고위층의 자제가 장군이나 고위 장교직을 차지하던 고대 사회에서는 가히 파격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치적을 기록한 <키루스 실린더>는 소위 <키루스 헌장>에 대한 설명서로서 <노예의 해방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선언문이 들어있다. 키루스 대왕을 혁명가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그의 헌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영국이나 미국의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s: 인간의 권리를 천명한 헌장 및 법률 >이나, 프랑스의 <인권선언> 그리고 1948년 제3회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世界人權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있지만 실제로 현대 사회가 고대 사회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확신할만한 사례는 고작 선진국 일부에만 발견할 수 있을 뿐,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별로 나아진 것도 없다.


이런 선언들이 제정되고 선포되고 헌법화되어도 왜 실질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권리는 그렇게 사회의 전계층이나 세계의 모든 나라에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을까? 특별히 경제적으로 급속성장을 한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는 오히려 국민들의 인권이 권력(정치권력, 언론 권력, 경제 권력)에 의해 침해당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 이유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지연과 학연 혹은 혈연>이라는 인간관계가 헌법 뒤에 교묘하게 숨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비유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한 존재 위치를 이탈한 인간들이 쌓은 소유와 능력의  바벨탑이 바로 문명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사회에도 특히 금융 자본주의의 세계에는 <슈퍼 허브>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보스 포럼>으로 알려진 <세계 경제 포럼(世界經濟 , World Economic Forum)>이다.


세계적 금융컨설턴트 산드라 나비디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다보스 포럼>에는 약 700명 정도의 세계 저명인사들이 모이는데, 이 네트워크는 모든 금융 허브의 슈퍼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JP 모건체이스의 CEO인 제이미 다인먼, 세계 최대의 자사관리사인 블랙록의 회장인 래리 핑크 그리고 해지펀드의 거물 조지 소로스와 같은 사람들은 '네트워크 권력'을 통해 사회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유럽중앙은행, 영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의 수장들 역시 그들 못지않게 예금의 이율, 주택대출의 금리, 연금의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서민들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막강한 권력이 <슈퍼허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사회 체제가 결국 바벨탑이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창세기 기자의 시각으로 돌아가보자.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 11: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6-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