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과 문자 그리고 정경: 종교의 역사
현대인들이 경전으로 알고 있는 모든 종교의 기본 사상이 집약된 책은 먼저 선지자들 혹은 창립자의 음성을 통하여 구전되다가, 이후에 문자화되고 문서화된 다음, 종교 회의에서 정경으로 채택된 기록들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경우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득도한 다음 80세까지 깨달음을 전파하였다. 공자 역시 72세에 소천하였으니, 그 당시로는 장수한 사람이었다. 노자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불교의 경우 다른 종교와 예외적으로 수많은 경전들과 조사들의 어록들을 망라하여 일반적으로 <대장경>으로 부른다. 유교의 경우 처음에는 시경, 서경, 역경과 춘추와 예기로 구성된 오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다가, 공자의 제자들이 예기에서 대학과 중용을 분리하여 소책자로 만들었다. 그 후 논어와 맹자를 더한 <사서삼경>이 유교의 공식 경전으로 불리게 된다.
도교의 경우 상황은 좀 복잡하다. 도교의 핵심 경전인 노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은 주로 하상공판과 왕필판으로 분류되었는데, 1973년 중국 장시성 마왕퇴에서 발견된 도덕경 판본이 백서에 담겨있었는데 이 판본이 왕필본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왕필본을 통용본으로 인정하다가, 1993년 화북성의 곽점촌에서 죽간본이 발견되면서, 도덕경의 원본으로 추정된 이것과 후세의 통용본과의 차이가 드러나게 되었다.
히브리 성경과 신구약 성경은 언제 정경화 되었을까? 로마가톨릭교회는 AD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칠십인역이라는 헬라어 구약본 46권과 새로 확정된 신약 27권을 합쳐 73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그보다 앞서 유대인들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LXX)을 부인하고, 얌니야 종교회의에서 히브리어 성경 39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이에 비해 종교 개혁 이후 개혁파 교회는 히브리성경 39권과 헬라어 성경 27권을 합쳐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성경이란 책이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종교 개혁가들이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신하였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구약을 <이스라엘의 책> 그리고 신약을 <교회의 책>이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구약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혹은 유대인 집단에서 구약이 형성되었고, 가톨릭 교회가 공인된 이후 그 교회에서 정경화 되었기 때문에 구약보다는 이스라엘이 그리고 신약보다는 교회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개혁주의 교회나 교단에서는 <오직 성경, 오직 기록된 말씀>이란 표어가 종교개혁의 5대 목표 중 하나로 선언되었는데, 그 이후 성경은 수많은 해석을 통해 수 만개의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은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성서에 기록된 많은 이적들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희랍문화권에서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서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흥종교가 그렇듯이 창시자의 핵심 메시지는 그를 둘러싼 신화적 전설과 미담 그리고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글자를 모르는 일반 민중들에게 갑작스럽게 전파되는 일종의 전염병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신흥종교를 실정종교로 변환시키기 위해 신학자(학승, 유학자, 경전 해석가)들이 동원된다. <증인과 목격자>들이 사라지고 <일부 증거와 문서>만을 수집하여 편집하고, 그것을 변증 하는 데 성공하면 보편종교로 도약하고 실패하면 서서히 도태되는 역사가 인간이 만든 <종교의 역사>이다.
일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음성 중심주의>로 돌아갈 것을 외치는데, 이것은 성서의 역사에서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구약의 문서화 작업에도 구전 전승과 문서 전승은 팽팽하게 대립하였는데, 계시의 경우 선자자의 음성은 생생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나, 서기관에 의해 문자화되면 그 생동감이 사라지고 고정된 기호로 그것도 메타포로 가득한 수수께끼의 언어가 되어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