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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Sep 19. 2024

인문지리학의 시선 1

인문지리학에서 탄생한 공간적 전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처럼 보이는 '공간적 전회(Spatial Turn)'란 말은 1989년 미국의 인문지리학자 에드워드 w. 소사가 그의 책 [포스트모던 지리학]에서 사용한 개념이었다. 그 후 이 말은 인문지리학을 넘어서 급속도로 학문 전반에서 21세기적 세계문명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사실 인문지리학(人文地理學, human geography: 지표에서의 인간 활동에 의한 모든 현상을 기본적으로 자연환경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나아가 그 현상의 지역적 특성 및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학문도 지리학자들 이외에는 별로 주목을 받는 학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간적 전회'란 말이 인문학 일반 혹은 여러 과학의 분야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자 이 학문 역시 급조명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인문지리학자들이 집필한 [인문지리학의 시선]이란 책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다음에 [공간적 전회]란 책으로 넘어가지로 하자.


인문지리학자들에게 지리학은 백과사전적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잘 남아낸 학문으로 규정된다. 우리의 삶은 우선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간적 삶은 너무 당연하면서도 사람들은 이 공간을 늘 망각하거나 또는 그 중요성을 잊고 살아간다.

에드워드 소사는 정보화 사회, 세계화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스페인의 도시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이 20세기 후반에 공간적 문제의 중요성을 받아들인 점에 주목하며, 그가 [공간의 재생산]이란 책에서 밝힌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프로젝트를 수용한 결과를 종합하여 다음의 견해를 피력한다.  


"공간은 사회의 반영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이다... 공간 형태는 주어진 생산 양식과 특수한 발전 양식에 따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포함하고 실행시킨다. 동시에 공간 형태는 피착취계급, 억압된 피지배계급, 피지배 여성들의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모순적 역사작업의 작업이 이미 물려받은 공간 형태, 이전의 역사적 산물, 그리고 새로운 관점, 프로젝트, 저항, 꿈 등에 지속적으로 수반된다."  


카스텔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지리학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세계 각 지역과 공간과 장소들이 모두 같아지게 되면, 그래서 그들의 삶의 방식이 모두가 비슷하게 된다면, 지리학의 대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결과는 인간의 삶을 네트워크로 연결시켰고,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공간(예를 들어 메타버스)을 만들어나간다.


과거의 지리학의 영토 혹은 경계 역시 다른 학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희미해지고 있다. 자신만의 학문의 영역을 고집하다가는 시대에 뒤처진 분야로 인식되기에 서로 협동하거나 융합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이는 지리학 특히 인문지리학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리학의 주제는 이제 위치와 장소에서 문화로 바뀌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학은 위치(location)와 장소(place)라는 기본 개념에서 출발한다. 위치는 지표면 상에서 절대적 위치와 상대적 위치로 표현될 수 있다. 절대적 위치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위치를 의미한다. 상대적 위치는 위치 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상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전화로 '어디야?'라는 물음은 단순히 지표상의 위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통화자의 위치가 자신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 지를 함축적으로 묻는 것이다.


위치가 지리학자들만이 가지는 원초적 개념이라면 장소는 지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지만 건축학, 조경학, 사회인류학, 문화인류학 등의 학문에서도 지리학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인문학자이며 동시에 사상가이기도 한 데이비드 하비에 의하면 장소란 개념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한다.


"장소의 기원과 장소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지리학을 하나의 중심학문으로 부흥시키며, 또한 장소는 정체성을 포착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하비)" 다른 학자들은 장소 정체성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소 정체성이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대답하는 것이다.(큐바/휴몬)"


오늘날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너 어디 살아? 혹은 너 어디에 근무해? 또는 너 휴가를 어디서 보낼 거야?>라는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을 안 해도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장소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공간(space)란 개념은 일반적으로는 구별하지 않고 사용되나, 지리학에서는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한다. 자! 이제 <인문지리학적 관점> 혹은 <공간적 전회>에 대한 궁금점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다음 에세이를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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