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경관을 새롭게 읽기
1. '다름(차이)'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른바 '계몽주의적 이성' 혹은 '근대적 이성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근대성(modernity)를 기본으로 하는 서구 중심의 근대화 개념은 세계화되고 보편화되었으나, 그 이점과 동시에 단점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근대성의 이면에 있는 '서구중심주의'와 '규격화된 획일성'으로 모든 지역과 개인의 특수성을 상실케 하는 요인이 되었다.
건축을 예로 들면 한국의 아파트는 거의 획일적으로 고층의 직사각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이 가장 공간활용이나 건축비용의 절감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베이징이란 도시에 가보아도, 각각의 아파트마다 건축의 고유한 특성이 다르게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근대화를 한국보다 늦게 시작하였으나 서구적 근대화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의 아파트는 아직도 거의 같은 형태로 지어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원리 즉 합리성, 효율성, 보편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과 달리 다양성, 차이성, 개별성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근대 이전의 전통에 대해서도 개방적 입장으로 그 문화의 고유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한다. 지리학에서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개념인 '공간(space)'에 대비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장소(place)'를 강조한다. 장소는 지역적 차이를 의식하면서 지표를 개별 조각으로 읽어내거나 이해할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2. 경관과 장소를 해체하여 읽기
해체적 읽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현상 이해의 한 방식이다. 이는 어떤 현상 일체를 분리하고 소멸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화된 근대성을 해체하여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일종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특별히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지식의 정치학을 이해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도학의 개념과 상징, 언어를 사용했으며, 특히 공간과 경계, 네트워크에 집중하였다.
푸코에게 지식은 투쟁이었으며, 주로 공간과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이른바 거대 제국의 형성사를 보면 상부의 이데올로기(신화, 신학, 형이상학)의 투쟁이 있고, 그다음 그것에 의한 영토화 즉 하부의 지리학적 통치 영역이 정당화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조선의 유학 논쟁은 결국 권력 투쟁과 통치 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이념적 투쟁이었다.
경관(landscape)이란 눈에 감각적으로 들어오는 풍경이나 경치와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다. 역사지리학자 다비는 경관을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화와 통합', '자연과 인문의 결합된 결과', '다양한 힘들의 순간적인 균형이자 평형 상태'라고 보았다. 장소(place) 역시 인간에 의해 의미 부여된 지표의 일부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관과 장소를 읽는 방식은 읽는 주체(사회 집단)마다 다를 수 있다.
3. 포스트모던 지리학적 담론
저자는 두 가지 현대적 접근 방식을 통해 경관과 장소를 포스트모던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선 문화기호학적 접근은 포스트모던적 지리학에서 경관이나 장소에 내포된 이데올로기 및 담론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고지도에서는 지표와 장소를 재현한 결과물로서 그 안에는 제작자가 부여한 의미 및 그의 세계상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고지도를 해독은 실제 지형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지도라는 텍스트 안에 담긴 다의성을 해독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문화정치학적 접근이다. 이는 경관과 장소의 생산 주체와 그의 코드를 포착한 다음, 그 안에 내재한 사회, 공간적 연망(socio-spatial nexus) 및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경관 장소 생산의 사회적, 정치적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 예를 들어 강남이 권력 담론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이 지역의 집값이 높아지는 이유는 고도로 발달한 사교육 시장을 통해 SKY 출신이 점유한 경제, 정치, 언론 엘리트의 권력층 진입에 용이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개의 경관이나 장소보다 그들 간의 네트워크에 그리고 공간 범위보다 경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던 지리학적 담론의 핵심이다. 자본주의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성장한 한국이나 중국의 도시 내에는 이런 경계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 데, 아무리 지방 살리기, 분권화 운동을 정권마다 표어로 걸어도 여전히 서울의 강남 인근에로의 인구 이동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권력 네트워크와 소득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과연 이런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으며, 권력 네트워크를 어떻게 약화시키고 분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복합적인 물음이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모색과도 연결되어 있다. 고대와 현대의 지도의 이면에는 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피라미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이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신정사회이든 간에 이 구조는 여전히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