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간에서 무엇을 읽는가?
공간적 전회(Spatial Turn)란 개념의 역사는 [인문지리학의 시선] 첫 에세이에서 밝혔듯이 1989년 미국의 인문지리학자 에드워드 W. 소자는 그의 책 [포스트모던 지리학]에서 <역사, 지리, 근대성>이라는 장에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공간적 전회 해부"라는 소제목을 붙여서 이 개념을 부수적으로 다룬 것이 이 담론의 시작이다. 이 텍스트에서 소자는 당시 유행하던 역사 유물론의 역사를 비판하였으며,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이란 저서 안에 실린 사상을 인문지리학적으로 재평가하였다.
그 이후 공간적 전회란 개념은 신학과 조직이론에서도 공언하는 용어가 되었고, 문화학과 사회과학에서는 이미 자기 분야의 공간적 전회를 선포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약 10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데, 대부분 개별 학문 내부적으로 토론이 이루어지며 범학문적 공간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간적 전회를 다룬 독자적인 토론집이 <국제적으로도> 발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자들은 이 책의 발간 동기를 밝히고 있다.
공간적 전회는 1980년대 말부터 주로 포스트모던 매체이론에서 확산된 '공간의 소멸' 혹은 '지리학의 종말'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매체이론은 19세기에 전기와 철도가 공간에 초래한 결과를 목격한 후 인구에 회자된 주장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그것은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최초로 사용한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이란 개념에서 출발한다.
매체기술과 통신 기술이 우리의 모든 시공간적 인식의 지평을 압축했으며, 원격통신의 발달, 마이크로 전자혁명, 인터넷 등이 이 발전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이 포스트모던 매체이론의 진단이었다. 이어서 문화이론가 지그리트 바이겔이 사용한 <지형적 전회(topographical turn)>란 개념이 문화학에서 등장했다. 그는 공간 자체를 일종의 텍스트로 보아야 하며, 그 텍스트의 기호나 흔적은 기호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해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역사학에서는 '공간 속에서 시간을 읽는다'는 주제로 공간적 전회를 대중화시켰다. 이것을 행한 대표적인 저서는 2003년 동유럽사학자 카를 슐뢰겔이 펴낸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을 읽는다. 문명사와 지정학에 대하여]이다. 역사에는 시간적인 지표만이 아니라 항상 무대도 존재한다(History takes place)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재구성할 사건이 역사 속에 가지고 있는 구체적 장소 고정성까지 함께 설명하지 않으면 그 역사서술은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매체이론의 대표자 마셜 매클루언은 새로운 지구촌 세계는 최초의 통신위성 텔스타를 통해 탄생하였다고 보았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니크 이후 50년이 지나자 인공위성 기술의 매체적 물질성이 현대인의 문화적 의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태고시절 천체와 별자리를 좌표로 삼아 위치를 확인했던 방식이 지금은 위성항법장치(GPS, Global Poisitining System)를 통해 완성된 것이다. 이 매체는 시공간 압축 외에 '거리에 기반한 인식방법'을 제공한다.
위성항법장치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생산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위성 통신 같은 개별 기술보다는 '거대 기술체계' 전체가 신화적 구조를 더 많이 생산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기술체계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보지 않고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역방향의 천문학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을 서문의 저자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시선의 혁명>으로 표현한다.
신석기 혁명 이후 인간은 태양과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자신의 위치를 측정하고, 그 위치로부터 항법의 안내도로 삼았다. 그러나 텔스타 1.2 호 이후 인간의 위치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하늘(인공위성)의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만년 동안의 시공간과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