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Sep 26. 2024

인문지리학의 시선 4

풍수 사상의 두 전통

이번에 살펴볼 주제는 책의 5장에 나오는 풍수 사상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풍수 사상의 두 전통이 '터 잡기 예술'과 '지식 체계'로 구분한다. 터 잡기 예술은 '명당 찾기의 풍수'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의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소유한 소수층이 여전히 '명당 찾기'에 매료되어 있다는 풍설은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어디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지를 보여준다.   


전통 풍수 사상을 연구하는 인문지리학자의 주된 관심은 일부 부유층의 사욕을 위한 명당 찾기가 아니라 전통적인 지리 인식 체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전통 풍수의 인식 체계를 기감응론적 인식 체계와 경험 과학적 인식 체계로 구분한다. 전자에는 형국론(지세의 겉모습을 사람, 사물, 짐승의 모습으로 풀이하거나 유추하여 그 형상에 상응하는 기운과 기상을 파악), 소주길흉론(땅을 쓸 사람과 땅의 오행이 서로 상생 관계인가를 파악), 동기감응론(조상의 기운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이론)이 있다.


후자에는 간룡법(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산을 용으로 보고 그 산맥의 흐름을 따라 조산에서 주산을 거쳐 혈장에 이르는 맥의 연결을 생기를 파악), 장풍법[명당 주변의 지세를 살펴 사신사(四神砂: 명당 주위의 좌우 전후에 있는 산)의 구조를 보고 양택(주요 건물)과 음택(묘지)을 판단], 정혈법(간룡과 장풍으로 파악된 명당의 범위 안에 땅의 기운이 집중된 혈을 찾는 이론), 득수법(물의 흐름을 살피는 것으로 강수량이 한국보다 적은 중국에서 중시), 좌향론(입지 할 건축물의 방향을 혈에서 바라본 방위를 기초로 적절하게 위치시키는 이론)이 있다.

풍수 사상을 적용하는 시각의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지도가 선택적 재현이며,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듯이 풍수 사상 역시 정치적 현실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런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풍수는 중국의 전국 시대에서부터 한대에 걸쳐 형성된 사상이다. 특히 한대에 들어와 오행설이 도입되면서, 풍수의 경전인 [청오경(靑烏經)]이 편찬되었다.


한국에 이 사상이 유입된 경로는 당나라로 유학 갔던 선종 계통의 승려들에 의해 도입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 풍수의 시조로 알려진 도선(道詵, 827-898)은 고려 태조와 관련된 예언으로 한국 풍수 사상의 창시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875년에 "지금부터 2년 후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예언했는데, 그의 말대로 송악에서 고려 태조가 탄생하였다.


그 후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 제8훈에서 고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풍수 사상을 활용하였다. 이 8훈을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은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에 ‘차령 이남은 공주강 밖의 산형과 수세는 모두 배역으로 달린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풍수지리가는 금강을 반궁수(反弓水: 물의 흐름이 홍수로 변할 위험이 커서 주위에 양택이나 음택을 꺼리는 강)라고 일컫는다."라고 해석하였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 역시 도읍을 옮길 때 도참설과 풍수지리 사상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반에 권력의 중심을 차지했던 영남학파 출신 정치가들이 풍수 사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치 왕건의 해석을 이어서 남인 출신 이익이 서인과 동인을 견제하는 데 풍수 사상을 이용한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 초기 고려와 조선 후기의 권력층은 백제, 후백제의 지역인 금강 주변의 지역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풍수 사상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인(영남학파)과 서인(기호학파)의 권력 투쟁에서 주도권을 잡은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이익은 남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니 당연히 영남학파(퇴계, 우성전, 유성룡, 이덕형, 김성일)의 문인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실제로 과거 이익이 비교한 낙동강과 금강의 주류가 여러 개의 지류와 합쳐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는 경상도를 언급할 때 하나의 강을 대상으로 그리고 전라도를 이야기할 때는 여러 개의 강을 대상으로 형세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실제로 전라도 지역의 강은 이익이 지적한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흘러가고 있지 않고, 섬진강만 남해로 흐르고 나머지 강은 모두 서해로 들어간다.


저자는 이 장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풍수의 인식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지식 체계로서 풍수를 인식하는 것은 풍수의 잃어버린 전통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풍수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과 편견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 '파묘'를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 안에 있는 비과학적인  <기감응론적 인식 체계>를 성급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기이한 문화 현상은 그동안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입시위주의 점수 따기에 급급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인문지리학의 시선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