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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Sep 23. 2024

인문지리학의 시선 3

생태론과 풍토론

1. 생태론의 한계


생태론(생태중심주의), 생태학에서 '생태(ecology)'란 생명체들의 존재 장소 혹은 그에 관한 학문을 의미한다. 생태학이 환경과 환경보호주의와 연관되어 있지만, 반드시 그것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생태학이란 자연계의 질서와 조직에 관한 전체 지식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하였다.


생태론의 입장은 근본 생태론에서 사회 생태론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생태론의 핵심 주장은 근대 이후 인간의 과학기술문명에 의해 지구의 자연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별히 생태론자들은 자본주의의 과생산, 과소비에 의한 생태계의 오염을 집중적으로 거론한다.


4장의 저자는 생태론이 가진 근본 한계는 인간과 자연환경을 동일한 존재 범주 안에 묶어버리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문명인이 닭고기를 먹는 것은 비도덕적이지 않지만, 신인종이 사람을 먹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로 규정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인간과 자연의 층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코브라가 어린아이를 무는 것을 보고 비도덕적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생태론은 환경 윤리의 차원에서 범주의 차이를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유기체를 동일 범주로 보는 생태론의 전체론적 사고는 인간의 주체성을 격하하고 때로는 묵살한다. 더욱이 근단적 자연생태주의는 자연의 원초적 상태를 복귀시키기 위해 잉여의 인간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독단적인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사상으로 빠져들 위험을 가지고 있다.  

2. 생태론을 넘어서 풍토론으로


풍토(風土)란 일점 범위의 지역에 나타나는 기후, 지질, 토질, 지형, 경관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풍토론을 체계적으로 확립한 학자는 일본의 환경 철학자 와쓰시 데스로우이다. 그는 일정한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을 풍토라 부르며, "풍토란 물리적, 생물학적 차원의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이해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와쓰시는 '추위를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예로 들면서 자연환경이 자연과학적 대상에 국한되지 않고 근원적으로 인간 자신과 관련된 문제, 즉 인문성의 문제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우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추위라는 독립 존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리가 추위를 느끼면서 비로소 한기(寒氣)를 발견하는 것이며 동시에 춥다는 느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풍토론은 자연환경과 인간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추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추위를 막는 여러 수단과 개인적, 사회적 도구를 만들게 된다. 이런 관계를 통한 인간의 자기 이해는 단순히 주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방의 가옥 구조나 음식 문화와 예술 등도 그 지역의 특수한 풍토와의 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자기 이해의 표현이다.

3. 세 가지 풍토형: 몬순, 사막, 목장


몬순이란 계절풍을 의미한다. 특히 여름 계절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대의 대양에서 육지를 향해 부는 바람을 말한다. 몬순은 뜨거운 열기와 높은 습기의 결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한국에서 올해 무더운 여름이 긴 이유는 몬순 기간이 길어진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풍토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온도계로 나타낼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방식의 하나이다.


이제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은 점점 더 몬순형을 중시하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아마 몬순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나 형태를 미리 연구하는 것도 한국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는 선결요건이 될 것이다. 수천 년간 우리의 조상이 알고 있었던 그런 여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랜 남양의 기후 속에서도 높은 생산력을 유지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사막 역시 독립된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역사적, 사회적 사막, 인간과 관계에서 존재하는 사막만이 실재한다.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초목 없는 바위산은 인간에겐 무섭고 두려운 산이다. 그러나 이런 속성은 원래 자연의 성질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 방식일 뿐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 초장에서는 자신의 평안함을 발견하고, 바위산에서는 자신의 두려움을 발견한다.

몬순형에서 문명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던 것과 반대로 사막형에서 인간들은 초지와 샘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전쟁을 경험한다. 그리고 전쟁을 통하여 인간은 부족의 갈등과 통합을 위한 유일신 사상과 영토 전쟁을 위한 유목형 전술이라는 사막적 특수 구조를 가지게 된다. 3대 계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주로 이런 사막적 특수 구조 속에서 발생하였다.    


목장형은 대표적으로 지중해성 기후에서 지중해 연안에서 발생한 풍토이다. 특이하게 지중해 일대는 위도상 북반구의 온대 기후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름의 강수량이 적어 건조한 편이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다습하여 온난한 기후를 나타낸다. 지중해의 고요함과 여름의 건조함에서 목장적인 요소가 발생한다.


이 지역에서는 바람이 약하기 때문에 모든 수목은 순리대로 자란다. 사막형에서는 인공적인 것이 합리적이라면 목장형에서는 자연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순종적 자연을 사랑이 넘치고 합리적인 것으로 표현한다. 이곳에서는 자연의 혜택이 그렇게 많지 않기에 몬순처럼 자연의 혜택을 그렇게 기대할 수도 없고, 사막에서 처럼 자연에 대항하여 싸울 필요도 그다지 없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지중해 지역에서는 사막형인 인간의 단결 즉 전체주의가 요구되지 않고 다원성이 인정되고 그것은 통일되지 않는 다원적 폴리스의 공존, 시민과 노예의 구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도 시민 계층에 국한되고, 그들은 노예를 통하여 노동에서 해방되고 우주를 관조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켰다. 현대 유럽은 바로 이런 목장형 구조의 연속선 상에서 바라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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