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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Sep 22. 2024

인문지리학의 시선 2

지도란 무엇인가?

1. 지도는 선택적 재현이다.


책 3장에는 지도에 대한 정의와 특성이 잘 설명되어 있다. 우선 브리태니커 세계백과사전(1994)에 "지도란 지구 표면의 일부 또는 전부의 자연 및 인문 현상을 일정한 규약을 토대로 하여 관습적 기호로 평면에 표현한 것이다."라고 정의된다. 한편 위키피디아(2004)에는 "지도(地圖)는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체의 상태를 약속된 기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일정한 비율로 줄여 평면상에 나타낸 것으로 국경지도, 종교지도, 역사지도, 전쟁지도 등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지도가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렇듯이 지도는 수학적 공간과 같은 절대적 공간 이외에도, 사회경제적 공간이나 경험적, 문화적 공간과 같은 상대적 공간, 행태적 공간과 같은 인지적 공간 등을 표현할 수 있다. 수학적 공간은 점, 선, 면, 평면, 형태 등으로 표현되고, 사회경제적 공간은 사이트, 시추에이션, 노선, 지역, 분포 등으로, 경험적, 문화적 공간은 장소, 길, 영역, 세계 등으로 그리고 인지적 공간은 랜드마크, 지구, 환경, 공간적 배치상 등으로 지도 위에 표현된다.


지도를 만드는 과정, 즉 지도화 과정은 실제 지표 세계를 평면으로 재현하는 과정이기에 다음과 같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등장한다. 재현이란 '사람에 의한 재현'일 수밖에 없기에 재현의 주체가 '누구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당연히 중국을 세계에 중심에 놓은 지도를 사용할 것이고, 미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각기 민족국가들은 자신의 국가 중심의 세계지도를 사용할 것이다.

2. 거짓말은 지도의 태생적 운명이다.


지도가 지도 제작자의 선택적 재현이라면, 지도가 거짓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맛집 지도를 제작해 유포한다면 의도적으로 돈을 받고 과장되게 혹은 왜곡된 정보를 지도 제작에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고 지도를 제작한다 해도 지도는 제작자의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운명적 거짓말'이 자리하고 있다.


지리학자들은 지도화 과정에서 실제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지도 제작을 위해 규정된 약속들로 축척, 도법 그리고 기호가 그것이다. 일반인들은 이를 실제의 지도로 받아들이는데 지리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지도는 하나같이 진실과는 다른 왜곡을 품고 있다. 마치 역사가 사관에 의해 다른 해석을 가지고 사건에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사용하는 역사적 사건인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조선정복>이란 사건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지도는 현실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재현 대상인 '지표 상의 실제 사상(事象)'과 재현 결과로써 '지도'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은 네 가지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지구라는 3차원 세계를 2차원의 종이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본질적 오류, 둘째, 지표 측량 기술이나 표현 기법과 같은 과학, 기술 상의 한계, 셋째, 특정 시대와 공간 속에서 살아온 각 문화 집단들 간의 세계관의 차이, 넷째, 특수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제작자의 의도가 그것이다.  

3. 지도는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도는 객관적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패권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대륙이나 세계지도는 한 국가의 영영의 범위 및 주권을 주장하는 데 사용된다. 영토와 영해 지도를 제작하고 특히 거기에 자국에서 명명한 지명을 기입하는 행위는 자국의 관점과 다른 명칭이나 견해와 투쟁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동해와 일본해 표기의 차이이다. 마찬가지로 한일의 독도 영토 분쟁이나 러일의 쿠릴 열도 분쟁은 각국 지도 제작의 배후에 이런 정치적 동기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지리학자 브라인언 할리는 지도를 본질적으로 권력의 담론에 공헌하는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문서로 보았다.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GPS 위성을 사용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은 미국지리정보국의 주도 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구글 어스는 이러한 위성 지도를 최초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실용화한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러나 위성지도의 표준화를 선점한 미국과 미국기업의 배후에는 세계 권력의 주도권과 상업적 이익에 대한 고려가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4. 메타버스 안의 나?


현대인들은 많은 시간을 소위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공간에서 생활한다. 이 세계는 3차원을 넘어 4차원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메타버스의 지도 역시 이차원의 지도처럼 선택과 왜곡 혹은 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다양한 메타버스의 공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한 선결 과제이기도 하다.


과연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본래 위치는 어느 곳인가? 이 물음은 신석기 혁명 이후 인문지리학을 떠나서 모든 종교, 철학, 예술의 근본 화두이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는 이 물음을 가지고 살아가며 죽는다. 비록 메타버스에 남긴 나의 디지털 흔적들이 영원히 존재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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