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한 덩어리(2)
지난번 에세이에서 저자는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영이 '이중 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 '을 통해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파동인 전자를 수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파동함수(wave fuction)이다. 슈뢰딩거가 제안한 이 혁명적인 관점은 특정 위치에서 파동의 진폭이 그 지점에서 입자로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물리학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전자의 파동이라는 특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파동이라는 말을 들을 때 대체로 연상되는 현상은 진동하는 물체이다. 에밀레종을 치면 그 물체에서 소리가 파동으로 확산되어 우리의 귀에 전달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파동 함수의 파동은 이런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정보이다. '범죄의 파동'이 범죄자들이 일으키는 소란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을 의미하는 것처럼 파동 함수는 특정 위치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낸다.
빛에 관한 물리학적 관점은 이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여주었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에 따르면 빛은 분명히 파동이었고,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를 설명하려면 빛은 '광자'라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광자도 파동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파동에는 광자의 도착점을 알려주는 수학적 정보가 담겨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물결처럼 넘실대는 실체적 파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자의 위치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 파동을 닮은 수학적 함수'라는 뜻이다.
양자물리학은 이토록 기이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입자는 '확률 파동'이라는 수학적 객체로 존재하다가 관측이 행해지는 순간에 실체로 둔갑한다. 간단히 말해서 관측 행위가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자가 감지판에 도달하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는 한, 전자는 공간에 펴져있는 확률 분포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 분포는 파동적 함수로 표현된다. 저자는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자신이 선물로 받은 조미 가모프라는 물리학자가 쓴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란 책의 내용이 거의 양자 역학의 원리에 가깝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그 책에는 톰킨스라는 사람이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명한 물리학자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강연 도중에 수시로 졸면서 이상한 꿈의 나라로 빠져든다는 내용이다. 그는 꿈속에서 미세한 양자의 세계로 들어서는 데, 그곳은 전자를 비롯한 기본 입자들이 야구공만큼 컸고 한 마리의 사자나 원숭이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존재하는 세계였다. 갑자기 크고 희미한 호랑이가 그에게 달려들었는데, 그와 동행한 한 교수가 호랑이에게 총으로 총알들을 쏘았고, 그중 하나가 명중하여 희미했던 호랑이는 한 마리의 또렷한 호랑이(관측된 호랑이)로 변신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상상에 의한 허구가 아니라 양자 세계에 존재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그 세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아무리 매혹적이라도 우리의 일상적 사고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고 기이한 세계로 나타난다. 위의 발견들을 종합하여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자는 파동 함수로 서술되는 결정론적 전자와 순전히 확률에 의거하여 위치가 갑자기 결정되는 불확실한 전자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말이 아무리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만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물리학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를 일반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은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냥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태초부터 자연에 내재하고 있는 불확정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제시된 가설은 관측이 행해지는 순간에 파동 함수가 붕괴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이 각기 다른 현실 세계에 구현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 가설은 1957년 미국의 물리학자 흄 에버렛이 발표한 '다중 세계 해석'이다. 흔히 다중 우주 가설로도 불리는 이 이론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내가 지금 10년 동안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의 아파트의 광경은 재건축되지 않는 한 동일한 풍경을 유지한다. 모든 가능한 우주에는 아파트 14호와 16호가 뒤바뀐 우주도 있을 텐데 왜 우리의 눈에는 항상 똑같은 풍경만 보일까?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면 관측의 순간에 일어나는 점프를 물질적 현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간주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불교의 화엄사상의 핵심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과 유사하다. 그러나 저자는 쉽게 어떤 세계관을 만들지는 않는다. 일단 양자 물리학을 좀 더 알아보려고 우선 가장 난해한 문제인 '동일한 조건에서 실행한 이중 슬릿 실험이 매번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의 과학적 근거를 파고든다. 혼돈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주사위의 눈금을 결코 예측할 수 없지만, 수학적으로 따져보면 동일한 환경과 동일한 초기 조건에서 던져진 주사위는 항상 똑같은 눈금으로 착지해야 한다. 그러나 양자 물리학은 이런 과학적 원리를 흔들고 있다.
리처드 파인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한 강연장에서 "여러분에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양자 역학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돌아버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만큼이나 독창적인 물리학자인 그도 이해하지 못한 양자 역학을 물리학도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가 보기에 양자 물리학은 일종의 과도기적 이론이며 기본 입자의 궁극적 특성을 서술하는 궁극의 이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대 물리학의 정설에 따르면 우리는 우라늄 덩어리 안에 존재하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런 해석은 인식론을 존재론으로 변화시킨다. 우리가 위치와 운동량을 모르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나 소립자는 현실 세계가 아닌 가능성의 세계에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명시하여 신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놓았지만, 창조주라는 개념에 존재하는 또 다른 틈새를 메우는 역할도 했다. 그중에 가장 커다란 틈새는 이것이다. "우주는 왜 텀 비어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이 문제는 제법 어렵게 들리지만 내막을 알고 나면 그렇게 난해한 질문이 아니다. 양자 물리학에서 보면 일단 텅 빈 공간이 생기기만 하면 물질이 존재하게 된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무에서 입자가 탄생한 것도 공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텅 빈 공간만 있으면 창조주가 없어도 물질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진공 중에서 입자가 나타나는 현상을 <양자 요동, quantum fluctuation>이라 한다. 스티븐 호킹이 발견한 블랙홀 복사도 양자 요동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양자 요동으로 진공 중에 입자가 생성되는 것처럼 양자 중력 이론을 도입하면 시간과 공간의 탄생 과정도 설명할 수 있다. 완전한 무에 수학을 입력하면 우주라는 결과가 출력되는 식이다. 저자의 책상 위에 놓인 우라늄의 궁극적 기원은 아마존이 아니라 약간의 수학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