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동의 개체화에 대한 철학적 해석 3

물질, 생명, 정신의 개체화

by 박종규

이제 서론에서 시몽동은 물질과 생명 그리고 정신에 대한 개체화를 하나씩 단계적으로 해명한다. 사실 이 구조는 책 전체의 담론 구조 전체의 사유를 집약한 일종의 결정체와 같다. 신석기혁명을 거쳐 인류의 인지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함으로써 특별히 고대 철학자들은 주어진 세계를 안정적 평형을 이룬 질서(코스모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질서는 가끔 혼돈의 상태로 나타나나 그것은 평형을 유지하는 과정으로 이해했지 그 자체가 우주의 근원을 이룬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생성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 역시 만물은 흐르고 변화하지만 그 배후에는 로고스라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 역시 특별히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대립 에너지의 상보적 균형에 의해서 우주가 일종의 안정적인 평형을 이룬다고 사고했다. 사실 철학 이전의 신화적 서사에서도 평형을 유지하는 세력이 선한 신으로 설정되고 그것을 깨는 세력을 악한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몽동은 이런 안정적 평화를 본질적 상태로 보는 관점 때문에 이제까지 <개체화의 원리>를 제대로 탐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평형의 유일한 상태 즉 안정적 평형 외에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개별화를 적절하게 사유하고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준안정적 평형(metastable equilibrium: 겉보기에는 안정되어 있지만, 내부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잠재적 긴장이 남아 있는 상태)을 알지 못했다... 안정적 평형은 생성을 배제한다. 그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가능적 퍼텐셜 에너지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물질적 단계에서 어떤 물질의 결정(結晶)이 발생하는 개체화 과정을 주도하는 과용해나 과포화와 같은 체계의 상태로부터 물리적 개체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준안정계의 해소의 한 예로 제시한다. 소금의 결정이 생성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 과정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염도가 높은 바닷물은 준안정적 평형의 상태에 있다. 염전에 바닷물을 가두어서 태양빛 특히 적외선에 노출시키면 자연스럽게 개체적 결정(소금)들이 형성된다. 소금이란 결정은 과포화 용액이라는 긴장 상태가 먼저 있고 그다음에 그 긴장이 해소되는 과정의 결과로 형성된 개체라는 것이다.


시몽동은 물질의 영역에서 더 복잡한 생명의 영역에서 개체화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글을 읽어보자. "생명의 영역에서도 개체화를 특징짓기 위해 준안정성이란 개념이 통용될 수 있다. 여기서 개체화는 물리적 영역에서처럼 순간적이고 양자적이며 급작스럽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개체화는 자신의 뒤에 환경과 개체라는 이원성을 남긴다... 개체화는 아마 생명체에 있어서도 절대적 기원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속화된 개체화로 배가되는데, 생성의 근본 양태에 따르면 이 영속적 개체화는 생명 자체이다. 생명체는 자신 안에 영속적 개체화의 활동을 보존한다."

개체로서 생명체가 가진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자기 복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전정보를 전달한다. 개체의 유한성은 세포 분열의 유한성이지만 수정을 통해 새로운 개체화를 영속적으로 진행한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는 영속화된 개체화이다. 물질과 달리 생명의 개체화는 환경과의 연결을 통해 생성된다. 진화론적 모형에서는 개체가 먼저 존재하고 그 이후에 환경(자연)이 그것을 선택하여 적합하게 변화한 개체들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시몽동은 전개체적 장이 먼저 있고 환경과 개체는 이원적이지만 상호작용하며 개체의 생성과 동시에 환경도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생태계 전체 역시 단순히 경쟁하는 세계가 아니라 공진화(co-evolution)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공진화의 전형적인 예는 꽃과 벌의 관계에서 보듯이 꽃은 벌을 유혹하기 위해 더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고 벌 역시 꿀을 채집하기 위해 더 긴 혀와 정교한 감지 능력의 개체로 진화하는 것이다.


생명의 영역 이후에 발생하는 개체화는 정신의 영역이다. "정신현상은 존재자에 있어서 생명적 개체화를 잇따른다. 존재자는 자신의 고유한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주체로서 행동에 의해 스스로 문제의 요소로 개입하도록 요구된다. 주체는 개별화된 생명체인 한에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세계를 통해 세계의 요소이자 차원으로 표상하는 존재자인 한에서, 존재자의 통일성으로 생각될 수 있다. 생명적 문제들은 스스로의 위에서 닫혀 있지 않다. 그것들의 열린 공리계는 일련의 한정되지 않는 많은 연속적 개체화들에 의해서만 포화될 수 있다."

시몽동은 생명의 층에서 생겨나는 다음의 개체화 과정을 정신으로 파악한다. 생명체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생명체는 주체로서 세계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 살고 사회 속에서 관계하고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이 변화는 인간 주체에 의한 일방적인 변화가 아니라 환경과 주체의 상호 작용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생명과 정신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롭게 형성된다. 특별히 정신의 영역에서 "전개체적 실재는 다른 개체들의 실재에 합류하여 집단적 단위로 개체화된다. 정신적이고 집단적인 두 개체화는 상호적이며 개체초월적인 것의 범주를 정의하게 해 준다."


정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두 개체화를 인간의 현상에 적용하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선 정신의 개체화는 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사고나 의식 그리고 자아의 형성으로 그리고 집단적 개체화는 사회관계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언어나 문화 그리고 공동체의 형성으로 볼 수 있다. 두 개체화는 다시 서로 연결되어 상호적으로 작용한다. 즉 개인의 정신은 집단 속에서 형성되고 집단은 개인들의 정신 활동으로 형성된다. 이제 시몽동의 특유의 개념인 개체초월적인 것(transindividual: 초개체적인 것, 트랜스개체적인 것)이 나타난다. 이는 개인을 넘어 존재하지만 개인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영역으로서 지식뿐만 아니라 신앙이나 과학마저도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형성되는 실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어떤 철학 책의 서론은 주로 본문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서술하기에 본문보다 더 어렵다. 예를 들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란 책의 서설이 특히 그러하다. 보통 서론으로 시작하는 책과 달리 헤겔은 서설(Vorrede)과 서론(Einleitung)으로 서두를 구성 하는데 특히 서설 부분은 그의 변증법적 사고를 집약적으로 압축하였기에 해독하기에도 외국어로 번역하기에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하다. 보통 책의 목차와 서론은 여행의 지도로 이해하면 쉽다. 그러나 헤겔이나 시몽동과 같은 생성의 철학자에겐 지도가 먼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지도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도를 그대로 기술한다. 두 철학자 모두 서설이나 서론을 쓰면서 미리 머리에 둔 어떤 구도를 염두에 두기보다 마치 실전 바둑에서 두 기사가 서로 화점을 몇 개 둔 다음 다른 돌이 놓이는 순간에 다른 돌을 배치하는 일종의 생동적인 바둑 대국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필자가 접한 시몽동의 서론 역시 헤겔의 서설과도 유사하다. 한 문장씩 완성적인 글로 이해하기엔 여전히 생성 중인 문장이기에 문장을 구성하는 개념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독자의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선 뭔가 그의 사유의 기초를 이루는 구조나 개념들에 대한 희미한 그림만 남아도 성공이다. 이 에세이에서는 그가 정신에서 정보의 사건으로 이동하는 개체화 담론을 따라가고 마치기로 하자. 이제까지 그가 펼친 사유를 다시 요약한 문장이다. "개체화를 개체화된 존재자로부터 이해하는 대신 개체화된 존재자를 개체화로부터 이해해야 하고 개체화는 여러 크기의 등급들에 따라 분배된 전개체적 존재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을 실제 자연과 생명의 영역에서 진행되는 개체화의 과정으로 묘사해 보자. 그러면 더 명확한 구도가 포착될 것이다.

전개체적 존재는 하늘이 수증기로 가득 찬 준안정적 포화 상태와 같다. 이 장에는 아직 분리된 개체가 없지만, 잠재적 긴장과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어느 순간 그 긴장이 임계점에 이르면 개체화 사건, 곧 뇌우가 발생한다. 번개와 응결의 과정 속에서 구름 내부의 구조가 형성되고, 그 구조는 장 전체에 공명하며 퍼져 나간다. 그 결과 짙은 구름 속에서 빗방울이라는 개체들이 분화되어 떨어진다. 이 빗물은 대지 속에 잠재되어 있던 씨앗들의 가능성을 활성화시키고, 씨앗들은 발아하여 각기 다른 식물 개체들로 성장한다. 이렇게 형성된 개체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군락과 생태적 질서를 이루고, 그 상호작용 속에서 다시 열린 봄의 세계, 즉 새로운 집합적 개체화의 장이 생성된다.


서론에서 전개되는 개체화의 과정은 대체로 다음의 6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개체적 장-긴장 상태-전이(transduction)-개체 형성-층위 변환(change of level)-새로운 존재 구조이다. 여기서 전이는 생성의 과정이고 변환은 층위의 변화이다. 구름에서 비로 바뀌는 것을 전이라고 한다면 빗방울과 씨앗이 접촉하여 생명의 층으로 바뀌는 것을 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이(transduction)란 한 영역 내부에서 어떤 활동이 인접한 부분으로부터 부분으로 전파되면서, 그 전파가 그 영역의 점진적 구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용이다.... 개체화는 어떤 영역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종 하나의 층위 변환(changement)을 야기하여 현실의 새로운 조직 수준을 출현시킨다."

생명계에서 정신계로의 변환 역시 생명계의 개체화 과정에서 전이가 충분히 진행되고 그다음 임계점 혹은 특이점에서 일어나는 출현으로 볼 수 있다. 물질-생명-정신-집단이라는 층위가 형성되고 이 층위들은 정보라는 매체를 통해 연속적으로 개체화의 과정을 진행한다. 시몽동은 통상 정보가 정신의 산물이라는 도식을 뒤집고 오히려 정보 사건이 개체화 과정에서 개체의 형태를 부여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 정보는 미리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이미 형성된 구조 사이에서 전달되는 것도 아니라 준안정적 상태에서 구조가 형성되는 순간에 나타나는 작용이다. 물질 층위에서는 구조 촉발의 결정화 작용 사건으로, 생명의 층위에서는 조직화의 발생 사건으로, 정신의 층위에서는 의미 형성 사건으로, 집단의 층위에서는 공명의 사건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 개체화의 과정에서 <사건으로서 정보>의 역할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새로운 학우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는 시기에 특별히 어떤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중고등학교 시절은 단순히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준비 기간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여러분이 과연 이 세계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준비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가운데 한 학생의 마음에 깊은 공명이 일어나서 그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단순히 대학 진학을 넘어선 뭔가 자기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그 학생이 어떤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사람으로 사회에 등장하게 된 순간이 되었다면, 그 선생님의 말은 단순한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그 이후 한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개체화-초개체화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론의 해석은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