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9

석류나무

by 박종규

오래 관리하지 못한 정원은 가깝거나 먼 잡초 군락의 영토화나 비록 의도적으로 심었던 초목들이 기대 이상으로, 아니 기대 밖으로 군락화 된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인생이 그러하듯 정원도 역시 절제의 미학, 비움의 미학이 필요하다.


잡초이던, 정원수이던 혹은 우리 인생의 소유이던, 추구하던 가치이던 언젠가 적당히, 그리고 세세히, 결국엔 완전히 제거되어야만 할 때가 다가온다. 신은 무에서 유(피조물)를 창조하였다 creatio ex nihilo. 그러므로 모든 유(피조물)는 무로 돌아간다.


아파트와 주택을 하나로 합치면서 가장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은 내 마음의 정원이라고 자부했던 서재의 책들이었다. 소중한 것은 버리기 어렵다고 했던가. 학자에게 애써 모으고 그것으로 연구한 책들은 무형의 가치 이상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그때란? 먼저 우리 눈과 뇌의 상태가 자연스럽게 가리켜 준다. 그다음은 소위 거주 공간이라고 하는 집의 여백이다. 모든 무한정 기록되는 메모리 하드도 없듯이 책도 서가의 크기만큼 진열되고 저장된다.


일차적 제거 대상은 역시 다 읽지 못한 외국어로 된 전문 서적이었다. 폐기물 전문인 후배를 부르고 가장 먼저 정리한 책들은 내가 전공한 하이데거의 원서 전집이었다. 그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아도르노가 ‘날로 깊어가는 독일의 반병신 교육’이라고 비난했던 하지만 포스트모던 세계를 사로잡았던 하이데거의 독일어 책들을 버렸다.


.순서대로 하면 그다음은 헤겔 전집 차례였다. 하지만 헤겔 전집은 아주 작게 출판되어 서가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설 전집이 다음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한 권씩 흩어보다가 책의 3/2 분량에 연필로 밑줄이 쳐진 <이념들: 이덴(Ideen)> 1권만 남기고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

서재는 마음의 정원이고 책은 그 정원에 핀 혹은 심은 초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관념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언어라는 기호로 상징화되고 정보화된다.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란 책 이후 마음의 정원을 가장 정교하게 묘사한 철학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아니라 후설의 <이념들>이라는 책이다.


많은 잡초와 예상치 못한 수목들의 가지를 쳐내고 나서도 배롱나무와 석류나무만은 정원의 여유가 없음에도 잔류시켰던 이유와 같은 까닭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헨 판타 Hen Panta 모든 것은 하나이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모든 대지의 생명과 연결된 배롱나무에는 꽃이 피었고 석류나무에는 잎만 무성하였다. 그러나 배롱나무는 결국 병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석류나무는 아직 꽃이 피지 못한 채 나무와 가지 그리고 이파리의 세계만을 공유하고 있다. 언젠가 석류나무 가지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터지면서 아이들의 고른 치아와 같은 과질을 머문 씨들이 생산될 것이다. 만물은 하나이다. 그 열매 안에 만유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다림의 때이다.


우리의 마음은 노에마(의미 대상)와 노에시스(의미 지향) 그리고 센서스 휠레(감각적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 후설은 그의 책들에서 의식의 존재를 이렇게 삼분했으나 그것을 통합한 열매를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정원의 석류나무도 꽃을 피우지 않고 있다. 삶은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만유가 통합될 그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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