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나의 정원에서 자라난 모든 초목의 표층적인 것들이 흙이나 흙빛으로 돌아가기 전 정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꽃들은 일련의 소국(小菊) 무리이다. 야생 국화의 일종인 카모마일이 차로 성공한 이유 역시 가을의 향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가을에 피어난 꽃들은 광란하는 여름의 빛을 참고 견뎠기 때문에 차분하고 진하다. 그래서 그 향이나 맛이 포유류의 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 봄의 향기가 도발적이라면 대부분의 가을 향기는 일종의 진정제이다.
주로 대뇌피질에서 진행되는 사색은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 조직들의 긴장이 끝나는 곳에서 자유로워진다. 운동-신경망이 연속적인 것과 반대로 사색-이미지의 대부분은 불연속적이다. 인간 두뇌가 가진 일종의 특권은 불연속적인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의 정원은 서사적이지 않고 서정적이다. 가을에는 모든 내러티브가 낙엽과 함께 끝난다. 무성한 초목과 병약한 초목의 차이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겨울에는 침엽수의 몇 가지 종류만 제외하면 모든 나무는 나목(裸木)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원의 수목들과 화초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어떤 서사적 이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이다. 며칠 전 나는 우연히 들린 가까운 농협 매장에서 ‘까마귀밥 여름 나무’란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명명된 작은 식물을 판매대에 나온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나의 대뇌피질은 구매를 위한 상상력을 발동하여 다음의 스토리를 구상했다. 이 식물은 어떤 고상한 귀촌인(도시에서 시골로 이사한 사람)이 생계를 위하여 일 년 동안 힘들게 키운 일종의 분제와도 같은 희귀한 식물을 헐값에 내어 놓았다고.
만약 내가 이 식물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의 정원의 한쪽에 배치하지 않는다면 뒤뜰의 감나무들이 겨울 내내 아우성치며 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꿈들을 방해할 것이라고.
하지만 정원의 주변을 가득 매운 작은 국화꽃의 무리들이 내뿜는 아로마와 은은하게 적당히 희고 붉은빛이 섞인 꽃잎들의 아름다움은 그런 아우성을 물리치며 두뇌피질의 한쪽의 기억 회로에 담겨서 오랜 겨울밤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진통을 진정시킬 것이다. 소국의 힘이란 대국보다 놀랍다.
작은 국화 군락은 큰 국화들과 종으로는 연속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연속적이다. 아! 삶은 얼마만큼 연속적이고 또 불연속적인가? 가을은 여름과 연속되어 있지만 동시에 불연속적이다. 정원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신체-정신과 연속되어 있지만 또한 독자적이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혁명에 관한 모든 것을 깨달았듯이, 나도 정원에서 한아름 핀 작은 국화들에게서 퍼지는 은은한 가을빛과 가을향의 잔치에 빠져 자연-시간에 관한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