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13

by 박종규


약간 가뭄이 계속되는 이른 봄에 뜻밖의 대설이 정원에 내린 건 정원에겐 순전히 행운이다. 잔디는 초록물이 오르기 전 수분을 오랫동안 머금어야만 하고 벚꽃이나 그 밖의 봄꽃 나무들도 충분한 물기가 필요하다. 정원에서 비와 눈은 두 가지 방향의 사랑이다. 비는 하늘의 즉각적 사랑을, 그리고 눈은 점진적 사랑을 보여준다.


눈은 차분하게 내리지만 세인의 마음은 반대로 융기(隆起)한다. 단풍잎의 붉은빛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단풍나무에 쌓인 흰 눈이 보여주는 정감은 겨울날 남아있는 마지막 홍시 이상의 저림이다. 눈은 또 고동 빛이 남아있는 정원 탁자들 위에 생선뼈를 기다리는 들 고양이처럼 차분히 모여든다.


폭설이 내린 밭 위에 까치는 원시인에게는 종교적 징조이지만 현대인에게는 단지 상징적 미학에 불가하다. 누구에게는 아직도 논과 밭은 종교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투기 대상일 것이다. 믿음과 자본 사이에 그 자체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만약 비단뱀이 하얗게 눈이 덮인 잔디밭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자. 피카소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광경을 보고 아름답게 생각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가진 믿음은 진화나 역사의 토대 위에 발생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이것도 진화 혹은 역사이다. 감정도 진화이고 정원도 역사이다. 그래서 자연은 괴롭다. 생을 생되게 하는 것, 그것은 역사가 빠질 때일 것이다.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정원을 오늘의 정원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까지 내가 어떻게 정원을 가꾼 것인가를 잊어버릴 때이다.


목표가 사라질 때 인생은 허무해지지지만 장자(莊子)는 반대로 말한다. 목표를 세우는 순간 당신은 억지의 삶을 살게 된다고. 그도 틀렸고, 틀렸다고 말하는 이도 틀렸다. 반대로 그도 맞고 그 반대도 맞다. 눈이 오면 정원 식물들의 이름이 사라진다. 그래서 정원은 추상화가 된다.


첫눈 -이해인-


​함박눈 내리는 오늘


눈길을 걸어


나의 첫사랑이신


당신께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언 손 비비며


가끔은 미끄러지며 힘들어도


기쁘게 가겠습니다


하늘만 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당신의 눈사람으로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눈은 정원을 추상화를 만든다. 형태를 보존하지만 구체적인 모든 것을 덮어 버린다. 마치 수천 년 간의 종교와도 같이. 그래서 시인만이 그들의 시 안에 눈을 보존할 수 있다. 시는 모든 것을 보존한다. 가장 연약한 심성을 가진 시인만이 가장 온전한 자연을 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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