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12

홍매화

by 박종규

내가 어떤 충격으로 달라질 수는 있지만. 스스로 어떤 의지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의지는 생각을 담고 또 감정을 담는다. 마치 붉은 장미가 분홍빛과 흰빛을 담고 있듯이. 붉은빛은 분홍이 되었다가 희게 바래간다. 의지는 생각으로 조명되었다가 감정으로 약화된다.


감정은 불타는 것이지만 곧 꺼지고 생각은 여러 가지 상념이라는 재료로 아궁이에 불이 탈 재료를 제공하지만 마지막까지 부엌을 지키는 것은 의지이다. 정원을 지키는 것은 정원사의 의지이다. 레몬 타임이 스러지는 순간에도 화분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은 정원사의 감각이 아니라 의욕이다.


난간을 타고 이층까지 올라간 백화등이 내년에 다시 피어오를지 예측을 하는 것은 정원사의 희망이나 직관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의지이다. 로즈메리나 라벤더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오색 병꽃나무는?


홍매화가 갑자기 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봄이 다가온다고. 게으른 정원사는 갑자기 겨울잠에서 깨어난 불곰처럼 아주 느리게 홍매 쪽으로 걸어간다. 정원사의 의지에 실망한 홍매는 그의 감성, 정확히 말하면 그의 감정 중추에 기대를 건다.


꽃이 향을 내는 이유는 벌의 감정 중추를 자극하기 위함이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그건 아마 시인의 언어 중추를 촉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핫립 세이지는 다른 허브들 옆에서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의 내면은 프랑스 시인 이브 본푸아의 내면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처해 있는 존재의 표면 위에서

언어가 소멸되기를

최후의 바람만이

가로지르는 이 가뭄 위에서,


한 그루 포도나무처럼

서서 연소하던 자

최후의 노래하는 자가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물질을 빛나게 하면서

정점에서 굴러 떨어 지기를.


그대와 다시 만나는 이 나지막한 곳에서

언어가 소명되기를

불그스름해진 우리들의 낱말 위에서

외침의 아궁이가 좁혀지기를.


정원사는 시인만큼 피어날 꽃들이 외치는 아우성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정원사가 될 수 있다. 느리게 때론 실패하지만 그는 봄이 올 때까지, 겨울 내내 묵혀둔 거름이 다 발효되고 냄새가 지독한 악취에서 맡을 만한 냄새로 변할 시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상적 정원사의 삶을 동경하지만 그처럼 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다. 최소한 나의 정원에서는. 까치가 은행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곧 나무에는 싹이 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