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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Mar 04. 2022

3월의 당신

언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한 장면이 있다.

나른한 단잠에서 깨어 방에서 나오니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면서 귤을 까먹고 있는 언니가 보였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무릎 앞에 귤껍질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실로 그녀 다운 분방함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나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아무런 표정 없이 공허한 눈으로 티브이를 보며 의무적으로 귤을 먹는 모습이 왜인지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방에서 나오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텅 빈 눈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내게 언니는 항상 완벽한 사람이었다. 나의 우상이었고 동경이었으며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큰딸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를, 우리를 떠났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 몇 년과는 다르게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문득이 아니면 그녀를 잘 떠올리지 않는다. 잊혀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선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잠시 묻어 두어야만 했다.


그녀를 가장 오래, 긴 시간 떠올리는 달 3월, 언니가 떠난 달이다. 나는 살아오며 억눌렀던 기억과 감정을 3월이 되면 해방한다. 마음껏 애도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낯선 이를 만나 의미 없는 통성명을 할 때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하는 이에게 악의는 1%도 없다. 의례적으로 날씨 이야기를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시 머뭇하다 “외동이에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웃으며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겠어요,라고 말한다. 씁쓸한 웃음 뒤로 “네”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 안에서 작은 폭풍이 인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담은 소리 없는 아우성.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든다. 친족과 친구들 외에 언니의 부재를 알리지 않았던 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가족의 부재에 얼마의 안타까움을 느끼겠나 생각되지만, 나는 “언니가 있었어요”라고 말한 뒤의 불편한 공기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작은 거짓을 반복한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한 행위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영원히 모두에게 기억되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을 너무나도 가볍게 저버리고 말았다.


비현실적인 장례가 끝나고 현실로 당신의 부재를 직면했던 순간 혼자 방 안을 굴러다니며 처음 크게 울었다. 언니였던 당신은 이제 나이로 보면 한참이나 어린 내 동생이 되었다.

나는 당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저 당신을 내 삶의 동정으로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늘 미안한 마음 안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매년 이런 나를, 이기적이지만 뻔뻔하게 이해해달라고 감히 빌어본다. 모두가 다 당신을 잊는다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테니 제발 오늘도 내일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행복하게 있어라. 부디 그래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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