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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Feb 14. 2022

몰라, 그냥 써봤어.

“오빠, 내가 쓴 글 좀 봐줘. 내가 읽어줄게.”

소파에 누워 쉬고 있는 남편에게 나의 글 평가를 부탁했다. 내가 글을 읽는 동안 남편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뭔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낭독을 멈추게 하고 두세 번 더 읽어 달라 요청했다. 그런 시간을 몇 번 반복한 후, 남편이 나름의 평가를 내렸다.

‘같은 내용의 글이 자꾸 반복되어 지루하다. 처음은 좋으나 끝맺음이 없다. 간혹 어려운 단어가 나와 집중을 떨어뜨린다.’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이 분명한데 나는 독주를 마신 듯 목이 따끔하고 귓불이 벌게졌다.

“바보야! 멍청이! 오빠, 미워!!”

나는 탁자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척하며 남편에게 한껏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서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쓰레기야!”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달래주다가 같은 사이클이 다섯 번 이상 반복되면 위로를 중단하고 다시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나는 쓰레기야!”

“응”

또 한 번 나의 외침에 남편이 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도끼눈을 뜨고 누워 있는 남편의 가슴팍에 얼굴을 들이밀며 볼멘소리로 투정을 했다.

“어떻게 응, 이라고 할 수가 있어! 오빠 진짜 진짜 미워!!!”

남편은 진절난다는 듯 몸을 살짝 떨며 말했다.

“여보는 집에서 쓰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는 거 알지?!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단어 선택 폭이 그렇게 좁을 건 뭐야, 그래 놓고 쓴 글을 읽어 보면 사람들이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특이한 단어들을 집어넣고. 그거 다 허영이야.”

남편은 순도 100% 팩폭을 날리며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참 다정, 치사하다.

“허영 아니야! 많이들 쓰는 단어라고!! 멍충아!”라고 남편에게 우기는 동시에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본 풍경을 떠올렸다.

 

망원역에서 한 아주머니가 탔다. 누가 봐도 짝퉁임에 틀림없는 루이뷔통 후리스를 입고 있었다. 간혹 연배 있는 어르신 중, 그런 옷이나 가방을 든 분들이 있다. 그분들에겐 그것이 짝퉁이던 뭐던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저렴했거나, 패턴이 마음에 들었거나 했겠지. 혹, 저 아주머니도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 순간, 아주머니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나는 보았다. 짝퉁 구찌의 핸드폰 케이스를.

‘아, 이 분은 레플리카라는 걸 알고 산 거구나. 명품이 가지고 싶어서.’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_허영심.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명품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큼 꼴불견인 일은 없다.> 자차를 끌고 다닐 능력도 안 되면서 허영과 과시로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었다. 이처럼 진품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도 비웃음을 사는 현실인데, 한눈에 봐도 짝퉁임을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을 입고 걸친 아주머니의 허영심은 얼마나 큰 걸까? 맞은편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하던 아주머니를 보고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왔더랬다. 남의 인생 왈가왈부할 처지도 그럴 주제도 안 되지만, 저 허영이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과시로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까? 하는 궁금증도 조금 있었다.

 

남편의 말에 지하철 레플리카 아주머니를 떠올렸다는 건, 사실 나도 나의 허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 기초와 기본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교만 부리고 싶어 하는 어린 미숙아. 과시라고 믿으나 모두에게 파악당한 허영심.

인정은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토하자면 기교를 뺀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니, 정정한다. 모르고 싶은 부분이다. 나는 어렵게 봉인한 내 예민한 감정과 감각을 해제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다. 그러므로 진실된 글이 나오지 않는다. 한껏 포장된 언어는 화려해 보이려고만 하는 개살구처럼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신을 향해 쓰레기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이 아닐까? 뭐,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아, 몰라. 다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뭐야, 꼭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 정답이 있나? 규칙이야 있지만 정답은 없지 않나? 그럼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 쓸 필요가 있을까? 즐기며 쓰자. 내가 쓰고 싶은데로 쓰자. 그렇게 쓰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모르겠다고 빈 용지 두고 펜이나 돌리고 있을 바엔 뭐라도 써보자!

언젠가 모든 데생의 기초와 기술의 말미에 선의 명작을 남긴 앙리 마티스의 그림 같은, 심플하고도 깊이 있는 글을 탄생시키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허영이면 어떻고 과시면 어떠하리. 해본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럼, 나는 남편의 말대로 끝맺음이 약하니까 이렇게 끝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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