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리아 Mar 23. 2022

행복하지 않아도 좋아요

상담을 받는 날이다. 선생님은 의례 늘 하는 질문을 한다.


_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다시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좋아요.  

_아직도 불안하고 우울한가요. 네, 아직 문득, 문득이요. 일을 못하게 되면, 돈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해소되었는데도 불안해요. 아니, 불안보다 이상했어요. 며칠 전에 문득요, 어차피  죽을 거 살아서 뭐하나, 아, 살기 귀찮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감정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았어요. 무기력에 가까웠던 거 같아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_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요. 괜찮아요, 다들 죽음을 향해 사는 거니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통찰력이죠. 당신은 머리가 좋은가 봐요. 자, 하나 질문할게요. 당신은 왜 늘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나요? 음, 글쎄요. 저는 기질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고민과 고민의 끝에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성향의 문제라고 결론 내렸어요. 그래서 병원을 찾았고요.

 _좋네요. 잘하셨어요. 맞아요, 우울한 감정을 유독 잘 느끼게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이 거기에 해당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런 사람들은 약을 먹으면 효과가 좋아요. 2차적 환경 우울은 상담으로 치료하고, 당신 같은 사람은 약으로 치료하죠. 어때요, 의욕이 샘솟는 약을 처방해 줄까요? 도파민을 올리는 약을 먹으면 조금 더 좋아질 거예요. 네! 좋아요, 먹어볼게요. 선생님, 저는요, 행복하진 않아도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_그럼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피어날 때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