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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Mar 21. 2022

피어날 때까지

인스타에서 본 카페를 방문했다. 이름은 <종이꽃>으로 책과 함께하는 공간이다. 현 작가가 작업실로 쓸 공간을 카페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드에 올라온 사진을 본 순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쓰기 공부를 하는 작업실과 가까워 수업을 마치고 그곳을 찾았다.


굽이진 골목을 돌아 도착한 건물 2층의 종이꽃은 여느 카페의 입구와 사뭇 달랐다. 보통은 통유리로 내부가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은 철제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문을 여는데 어쩐지 용기가 필요했다. 마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호기심으로 가벼이 발을 들였지만 막상 입구 앞에 서니 막막하고 조금은 부끄러운, 그런 기분이었다. 잠시 머뭇하다 이내 뭐 어떠냐, 이게 뭐라고 하는 마음으로 문 손잡이를 당겼다.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주저하던 내 발끝이 무색하리만치 따뜻했다. 잔잔한 선율의 노래가 흘렀고, 바에는 젊은 여성 두 명이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종이꽃을 운영하는 작가가 커피를 내리며 나에게 조용한 인사를 건넸다.


바의 맞은편 안 쪽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테이블 세 개와 개나리 빛을 띤 노란 소파가 놓여 있었다. 벽에 기대어 존재감을 뽐내는 큰 전신 거울에 소파가 비쳐 기다란 개나리 밭이 펼쳐진 듯했다. 마치 이곳에만 이른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그에 더해 방 입구에서 보이는 완만한 아치형 창문이 온와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실내는 더욱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스마트폰에서 작은 화면으로만 보던 단면의 세상이 입체감을 띠고 내 눈에 담겼다. 이곳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구나, 하고 생각했다. 운영자가 어떤 심정으로 얼마의 정성을 쏟아 만들었는지가 눈에 그려졌다. 그 노고가 나처럼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 와닿는다면 좋겠다는 작은 오지랖마저 들었다.


나는 우선 거울 앞 소파에 짐을 두고 책장을 둘러보았다. 국내 작가의 산문집과 해외 번역본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사이 오사무의 책을 발견했다. 아직 읽지 않은 <만년>이라는 소설이었다. 오사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집어 들었다. 책을 구매하며 달콤한 바닐라라테를 한 잔 같이 주문했다. 자리로 돌아와 음료를 기다리며 책을 펼쳤다.


... 오사무가 날 실망시켰다. 도입부를 지나 몇 장 안 되는 분량이었지만 충분히 어렵고 지나치게 난해했다. <인간 실격>처럼 어둡고 축축한 이미지는 여전하나 당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책을 읽고 있자니 급격히 피곤해져 잠시 덮고 쉬었다. 이런 글을 내가 썼다면 아무도 읽지 않겠지. 읽었다 한들 겉멋에 취해 자신만 아는 글이라 욕을 먹었을 게 분명했다. 저명한 작가는 어떤 글을 써도 용서받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어쨌든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애정해 마지않는 독자들이 있으니. 그런 꼬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분명 이 작가를 좋아하는데 말이다. 어쩐지 괜한 오기가 생겼다. 나라고 못할 건 또 뭐야?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단숨에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아무 글이나 갈겨쓰기 시작했다. 딱히 쓰고 싶은 글은 없었지만, 버지니아 울프에 빙의하여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 물론 그녀의 발꿈치 각질만도 못한 솜씨임이 분명했지만, 펜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을 쏟았고 단어를 물색했다. 글쓰기 기본반에서 배운 기법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상기하고 되뇌었다. 그러는 와중 글을 가르치던 작가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모든 생활의 포커스를 글에 맞췄어요.”


아! 이런 건가? 아니, 작가님은 나보다 더 절실히 했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것도 그 비슷한 무엇이지 않을까? 이것 봐, 참 신기하잖아. 분명 나의 ‘나’였다면 지금 다 때려치우고 가방 싸서 집에 가야 하는 장면이야. 이제 됐다, 하고 포기하고 접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그런데 나는 가방을 싸는 대신 종이와 펜을 꺼내 글을 썼어. 오호, 나의 포커스도 조금은 글에 맞춰진 건가. 갑자기 신이 났다. 조금 전까지 얄밉기만 하던 다자이 오사무의 글마저 사랑스러워졌다.


내가 종이꽃을 찾게 된 이유가 비단 인스타에 뜬 사진이 예뻐서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내 세계를 ‘글’과 밀접하게 만들 씨앗을 곳곳에 심어 두고 싶었다. 종이꽃을 방문한다고 해서 내 세계의 전부가 글로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비하게나마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처음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단순히 내 안의 울분을 토하고 싶었다. 저변에 쌓인 응어리만 덜어내면 살 것 같아서 짧은 단편을 썼다. 글쓰기 수업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내면 종국에 출판해준다는 한 모임에서 8명이 공동 저자인 책을 냈다. 그걸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재미를 느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쓰고 나면 행복했고 내 글을 보는 게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든 상관이 없었다. 그냥 계속 써보고 싶었다. 와중에 인스타를 통해 에세이 작가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게 되었고 본격적인 ‘글’의 세계로 들어왔다.


어디든, 무엇이든, 어떻게든 계속 밭을 갈구고 싹을 틔우고 말미에 어떤 식으로든 꽃을 피울 거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연구하고, 탐구한다. 느리지만 굴러가고 있다. 자기만족으로 끝나게 된다 해도 좋고,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해도 좋다. 내 삶의 시간이 ‘글’과 함께 흘러갈 수 있다면 족하다. 새로운 종이꽃을 발견한다면 나는 그곳이 어디든 방문할 거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내가 뿌린 씨앗이 거대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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