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리아 Jul 19. 2022

분실

교통카드로 쓰던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내 물건'에 집착이 대단한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살아온 인생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가 손에 꼽힌다. 필요 불가결한 것과 애정을 가진 것에는 특히 더, 내 안에 잘 간직되어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기에 잃어버리는 일이 잘 없다. 그래서 더욱 내 것을 잃고 나면 속상해했다.

감히 나를 떠난 것들을 원망하고 그리워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찾으려 애썼다.


 이번엔 달랐다. 당장에 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받았다. 카드 케이스가 꽤 마음에 들었었기에 아쉽긴 했지만 대체 물품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교통 카드를 대신할 수단도 있어서 미련 없이 포기했다.

 

신기한 일도 있었다. 완전히 분실하기 전, 두 번이나 카드는 제 모습을 감추려 했다. 한 번은 버스 좌석에 떨어져 있던 걸 겨우 찾았고, 한 번은 길거리에 떨어진 걸 바로 눈치채고 주워 챙겼다. 하지만 잃어버릴 운명이었는지 기어코 그것은 나를 버리고 떠났다.


 친구들에게 말하니 이 기회에 너도 삼성 페이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말하며 앱으로 재발급받은 카드를 바로 등록했다. 깔끔한 결말이다.


 별안간 관계에 관한 생각이 들더라. 인간관계 역시 집착의 집약체였던 나였다. 그런 내가 달라졌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헤어짐을 늘 염두에 두고 사람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죽고 못 살 것만 같고, 펄펄 끓는 애정이 넘치는 사이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되면 온도가 식는다. 그 후 서서히 멀어지 거나 남아서 적당한 온도로 지내던가, 둘 중 하나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을 주었던 사람은 '내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결국 남는 건 상처였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소중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 그들과의 온도는 매우 적당하고 강렬한 집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집착 대신 믿음이 생겼다. 이들은 섣불리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럴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슬프겠지. 너무 슬퍼서 몇 날 며칠을 울겠지. 그래도 괜찮아질 것이다. 세상에 집착을 가질 존재는 나라는 존재 단 하나. 내가 내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 보이는 것 외에는 없다.


 내게서는 멀어져 영원히 사라졌지만 어딘가엔 있을 '내 것'이었던 이들 모두에게 전한다. 어쨌든 행복하게 잘 지내주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네가 내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은 진심이었고 진짜였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