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내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담백한 말투로 마음을 전했다. 애절함은 없을지 몰라도 간절함은 있을 것이다. 그의 오른쪽 눈썹이 꿈틀, 위로 올라갔다. 화가 났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그 모습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나는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 화를 낸다, 나의 사랑 고백에 화를 내줬다. 그는 아직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
이별을 고했다. 조금은 모진 말투로 그에게 헤어져 달라고 했다. 더 이상 당신이 내 삶에 필요하지 않아 그만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과 함께 사랑을 고했다. 화가 날 만도 하지. 지금 내가 자신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여느 때와 같은 변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늘 그랬던 나였고 늘 받아주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건 단순한 변덕이나 앙탈이 아니다. 나는 정말 그와 헤어지고 싶다. 그만 내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를 잊고 새로운 삶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간절함을 담아 사랑을 전했다.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고 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오늘과 같은 단호함을 서로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가 나를 두고 먼저 떠난 적이 없었고, 내가 끝내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적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지금 완전한 이별을 했다.
아직 온기가 남은 그의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후드득 눈물을 흘렸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깨를 떨며 울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는 그를 내 목숨만큼 사랑한다.
한 달 전 여명 반년을 선고받았다. 더는 손쓸 수 없는 시기에 발견된 암이었다. 글쎄, 나는 특별한 이상증세를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허탈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건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죽으면 따라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는 그를 내 삶에서 몰아내야만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 달이 걸렸다.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울며 빌고 싶었다. 이기적인 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단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욕심 내고 싶었다. 그리고 욕심을 냈다.
과연 그의 인생에 사랑한다는 이 한 마디가 침묵보다 가치 있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