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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과 공리주의: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나

분류: 사상 / 창작: 나 / 글 다듬기: AI

by 동욱

10명의 선원이 타고 있는 배가 조난당했다.

그 중 2명이 사망했고, 남은 8명이 그 시신을 먹으며 버틴다면 구조될 가능성이 높다.

공리주의적으로,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식인행위는 옳은가?


너무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3 시절 윤리와 사상 시간에 선생님께서 들어주신

예시입니다. 이에 대해 써놓은 글이 있어서 AI로 다듬어 올려봤습니다.


배에서는 8명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8명이 살아남는 것이 2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보다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선택은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장기적인 시점에서 발생합니다.

비록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사회에 알려지는 순간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됩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면,

개인의 정신적 불안과 사회 전체의 도덕적 회의가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의 본성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이토록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발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당연하게 신뢰하지 못하고,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충격은 단순히 개인들의 심리적 고통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전체 사회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즉,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단기적인 이득만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판단은, 그 행위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간과하여 오히려 더 큰 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드러냅니다.


공리주의는 행위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거나 광범위한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습니다.


공리주의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상대적인 윤리 이론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행위라 할지라도, 행위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맥락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윤리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닙니다.


결국, 공리주의적 결정이 항상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눈앞의 결과라는 단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결정이 개인의 심리, 사회 구조, 그리고 장기적인 공동체의 행복에 미칠 수 있는 다각적인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는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당장의 가시적인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간 존엄성, 사회적 신뢰, 도덕적 가치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측면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상황 윤리적 성격을 지닌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이론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현실에 적용할 때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윤리적 딜레마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며,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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