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쓰임

by 조엘

며칠 전 성당의 한 자매가 묵주 팔찌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동하러 나갔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어디엔가 흘린 것 같다고 했다. 한 시간 이상을 걷거나 뛰었었는데, 다음날에서야 묵주 팔찌가 없어진 걸 알았단다. 그 길을 되돌아 가 샅샅이 찾는다고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는 분한테서 선물 받은 의미 있는 팔찌여서 귀하게 생각하는 물건이었는데, 어이없게 잃어버린 것이었다.


항상 웃는 표정인 이 자매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았지만 자기 실수로 귀한 물건이 없어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맘을 가리지는 못했다. 나는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너무 아깝네요. 근데 찾기도 쉽지 않겠어요. 누군가 그게 꼭 필요한 사람한테 가서 잘 쓰이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우산도 잃어버리고 볼펜도 잃어버린다.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휴대폰 충전기를 어딘가에 두고 오기 일쑤이고,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는 스웨터나 재킷을 흘리고 다니기도 한다. 뭔가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샀던 가격과 다시 사야 하는 비용이 생각나서 아깝기도 하지만, 그것에 부여했던 의미와 그것을 사용하면서 익숙해졌던 감정 때문에 마음이 힘들기도 하다. 누가 주었든 내가 샀든 '내 것'이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것이다.


그것들이 내 옆에서 나에게 주었던 사용가치나 마음의 위로 등을 어느 것이 대신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다시는 이런 것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어떤 물건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마냥, 어떤 특정한 자극이 있으면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오랜만에 높이 나는 까치를 보았다. 가을에 보는 그 모습은 좀 생소했다. 생각해 보니 가을에는 그저 주변에 먹을 것을 찾는 정도로 낮게 날거나 콩콩 튕기듯 걸어 다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봄에는 까치들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느라 입에 가지를 물고 부지런히 높이 날아다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그런데 그렇게 까치가 집을 지으려고 모으는 나뭇가지는 겨우 내 수분이 마르고 추위와 바람에 시달리다 떨어진, 나무가 잃어버린 나무의 것이 아닌가.


나무는 겨우 내 나뭇가지를 잃지 않으려 애썼겠지만 결국 어느 정도는 잃게 마련이고, 그중 일부는 썩어 다시 흙이 되고 양분이 되어 나무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까치의 입에 물려 다른 생물이 생장할 터전을 만들어주게 된다. 과연 나무는 그 잃어버린 나뭇가지들을 아쉬워하고 아까워할까? 가끔은 그 나뭇가지들을 생각할까. 그 나뭇가지가 내게 어떤 잎을 만들어 주었었는데, 어떤 그늘을 만들어 주었었는데, 어떤 춤을 추었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하며 추억할까? 아니면 흙이 되고 집이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되었다, 하고 만족해할까?


나무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나무는 그러한 '잃음'을 반복하면서도 매년 살아있고 매년 성장한다. 오히려 잃을 줄 알기 때문에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까.


돈도 사람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느꼈던 만족감과 슬픔, 뿌듯함과 아쉬움들이 속에서부터 되살아난다. 빈 손으로 태어나 생존하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얻고 쌓으려고 노력했던 많은 것들이 결국은 나의 손을 떠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내 손을 떠날 때에도 덤덤히 그리 말해야겠다.


이것들이 더 필요한 곳으로 가서 더 큰 쓰임이 있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나는 계속 앞으로 나갈 용기를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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