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죽음과 학창 시절, 세상의 불공정함을 처음 마주한 시기
8월 어느 여름날,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소풍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요일이 될 줄 알았던 그 주말의 전날,
토요일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은아야. 애들 잘 있지?”
전화기 너머로 들린 아빠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비슷한 울림이셨다.
“아빠, 이번 주에 못 와요? 낼 피아노학원 소풍 가는데..”
“응, 은아야. 아빠 다음 주에 갈게. 애들이랑 잘 있고,
엄마한테 꼭 집에 오라고 그래. 알았지?”
옆에 엄마는 손짓을 하며 없다고 말하라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수화기를 꼭 쥐고 말했다.
“응. 아빠, 엄마한테 오시라 할게.
아빠 담주에 꼭 오셔야 돼요. 다음 주엔 꼭.”
그게, 아빠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 날 새벽,
언니가 받았던 전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지금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엄마와 언니가 애들 셋을 데리고 급히 달려갔고,
이후 집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나는, 몇 시간 후 외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은아야. 동생들 다 데리고 빨리 와... "
"아빠 많이 편찮으셔요? 갑자기 왜 아프세요?
"... 응. 은아야. 빨리 와"
시외버스에 나머지 동생과 같이 타고 가면서
차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몸이 벌벌 떨리고, 아빠의 우시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아빠 죽으면 어떡하지? 불쌍한 내 새끼들.. 어떡하지 은아야.."
'아니야. 그런 일은 없어. 아빠가 안 계신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은
절대 있을 수 없어!'
그날,
아빠는 마흔다섯의 나이에 새벽에 숙소에서 쓸쓸히 돌아가셨다.
내가 중학교 2학년, 8월 여름 방학,
내가 태어나 가장 평범했던 하루가
가장 슬픈 하루가 되었고,
아빠와의 짧은 통화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빠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