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아빠는 그렇게 돌아가셨을까
그때 나는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사랑하던 아빠가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는지,
아빠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
우리에게 아빠를 뺏어간 그 사람들이 죽도록 미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엄마, 아빠, 우리 1남 5녀, 6남매는
아주 잘 살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누구에게도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화목하게 살았던 거 같다.
그 행복했던 우리 가족이 서서히 무너지고
엄마 아빠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말수는 적으셨지만 참 따뜻한 분이었다.
애들밖에 모르시고, 퇴근길에 항상 양손에 무언가를 사들고 오셨다.
동네에서, 진아(언니) 아빠만큼 자상한 아빠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육 남매를 둔 가정에서, 그것도 딸 다섯에 막내로 낳은 아들 하나.
엄마는 아들을 보기 위해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았고,
엄마 아빠 두 분 다 가족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싶으셔서
잘되던 운수업까지 내려놓고 서울로 올라와
교육과 생활을 위해 몸을 던진 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단단했다.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고,
교육열이 남다른 엄마는 그 시절, 피아노, 미술, 수영
할 수 있는 건 다 배우도록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안 싸우시던 엄마 아빠가 크게 싸우셨다.
아니, 일방적으로 엄마가 거의 반 미치광이처럼 화를 내셨다.
'아빠에게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아이는 그해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 아이는 아빠가 결혼하기 전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를
아빠 쪽 친척들—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진짜 장손’이라며 들이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존재로 인해
자상하던 우리 아빠는 죄인이 되었고
우리 엄마는 무참히 무너졌다.
아들을 갖기 위해 딸 다섯을 낳았던 엄마,
그 엄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진짜 큰아들’이라는 낯선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 뒤로 집안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매일 울고 계셨고
아빠는 더욱 말이 없어지셨다.
나는 아빠를 원망하지 못했다.
그간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최고인 아빠였고
엄마도 원망하지 못했다.
어떻게 엄마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는가..
그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되던 어느 날,
엄마는 집을 나가셨다.
"은아야. 엄마는 이렇게 살 수가 없어.
엄마를 이해해 줘."
나는 아빠를 압박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리라 이해했지만
언니는 무책임한 엄마의 행동을 비난했다.
집을 나가계셔도, 아빠가 일 때문에 지방에 가시게 되어
엄마는 집에 간간히 오셨다. 아빠에게는 비밀로 해달라 하시고.
우리는 중3인 언니부터 6살 막내까지
그렇게 6남매가 우리끼리 지냈다.
일하는 가정부를 오게 했는데,
집에 어른이 없으니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집에 있는 집기나 고추장, 된장 등을 훔쳐갔다.
이후 가정부도 나가게 하고, 우린 우리끼리 살았다.
밥도 하고 도시락도 싸고.. 중1인 나는 언니와 동생과 함께
더 작은 아이들을 씻기고, 보살피고 공부시켰다.
아빠는 그런 우리를 너무 걱정하셨다. 일 때문에 지방에 계시면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아빠 자신도 모르셨다.
그냥.. 그렇게.. 해결할 수 없는 족쇄를 차시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건 ‘죽음’이라기보다,
무너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 잊지 못할 그날의 기억 - 그 남자를 보던 날
엄마가 나가시고 얼마 안 지나서
오후 늦게 동생과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낯선 청년하나가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
"혹시.. 진아니?"
나는 본능적으로, 문제의 그 사람이란 걸 알았다.
"아뇨, 은아예요. 누구세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날카로웠다.
"나.. 아빠 아들이야."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여기 왜 오셨어요? 아빠 안 계셔요. 엄마도 안 계셔요.
그만 가시면 좋겠어요."
그 청년은 마당을 둘러보다가,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떠났다.
난 그 일을 비밀로 했다. 엄마한테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언니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
우리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아빠 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