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 글」 19세기, 완성된 듯한 물리 세계
근대 물리의 만개와 이성의 시대
16세기와 17세기에 거쳐 물질 세계의 변화인 운동에 대해 어떻게 다루기 시작하였는지, 그 변화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기계론적 인과론의 결정체인 F = ma 로 나타내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편하게 살게 해 준 전기와 자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전기의 흐름과 모터, 발전기, 전파등에 대해, 공간 미분의 식으로 어떻게 아름답게 정리되었는지도 이야기했죠.
18세기를 지나면서, 뉴턴이 열었던 물리의 세계는 정교하게 다듬어집니다. 역학도 라그랑주에 의해 일반화 좌표를 이용한 계산의 효율성과 최소 작용이라는 철학적 기반을 다집니다. 19세기에 이르러는 이미 이야기 나눈 전자기학이 너무도 세련되게 전자기 현상의 원인이 되는 전기장과 자기장에 대한 이론으로 정립되었죠. '장'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본질적 공간으로의 아름다운 세계를 열어주는 듯 했습니다.
18세기의 증기기관에 의한 열의 활용에 의한 동력의 확보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시도가 당연히 나타났고, 열역학이라는 분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19세기는 우리가 우주와 물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성된 듯 보였고, 물질 세계의 활용으로 증기기관(내연기관)과 전자기에 의한 공학적 세계도 미래를 향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근대 물리학의, 과학의 꽃이 만개한 시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8세기의 계몽주의가 꿈꾸었던 이성에 의한 세계의 지배가, 수학적인 논리 체계에 의한 물질 세계의 이론적 완성으로 나타나는 듯 했습니다.
20세기를 통과한 현재까지도 어쩌면 우리는 이 흐름의 영향아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은 18세기말 혁명의 설익은 독소들과 20세기의 세계 대전을 지나가며 이성의 세계에 의문을 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물질 세계에 기반한 과학적 세계관은 그러한 철학적 세계가 무색하게 견고해집니다. 테일러주의와 컨베이어 벨트가 상징하는 포드주의, 컴퓨터에 의한 공학적 통제는 철저하게 발전됩니다. 그리고 그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과실과 함께, 일에 대한 기계화된 파편성도 같이 얻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일까요, 20세기의 물리학은 19세기의 만개한 이성적 논리의 세계를 부정하는 흐름으로 나아가는 듯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완성해왔던 세계를 말입니다. 물론 공학의 세계는 그 조차도 자신의 통제의 세계 안으로 포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크게 부정했던 양자물리조차 반도체를 통해(최근은 양자암호와 양자컴퓨터 까지) 오히려 컴퓨터를 통한 제어의 세계에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 만큼 19세기의 견고히 완공된 듯한 수리적 물질관은 기술 이데올로기화 되어 21세기까지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요. 통제 불능의 무작위적 통계의 세계는 이제 Big Data에 대한 Deep Learning으로 예측에 의한 제어의 세계로 이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철학과 정치는 근대를 넘어섰을지도 모릅니다. 물질 기반의 토대는 어떨까요? 어쩌면 19세기의 기치를 받들고 발전시켜 왔을터입니다. 단지 너무 달려서 너무 빠르게 서로 얽혀서 만든 인간조차 감당치 못한 세계가 된 것은 아닐까요. 그것을 20세기의 천재들이 이미 사고관으로 나타냈을까요.
21세기는 여전히 물질적 기술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그 극한에 서서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릴까요. 19세기를 정리해가며 들었던 작은 생각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