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세계의 과속?
평형 밖의 세계 였을까, 공장도. 혹시 VUCA ... ?
10년만에 공장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완전한 6 시그마 수준의 통제를 이제 요구하지는 않는 듯 하다. 물론 수율 개선은 이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니 당연히 강조되지만, 뭔가 방향성이 바뀐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아직도 장비간 매칭이나 시간적 관리는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 다만 그것을 왜, 어떻게 하냐는 부분에서의 변화인 듯 하다.
왜 분위기가 바뀐 것일까? 하나의 이유만은 아닐 터. 생각 나는 것을 나열해 본다. 1) 빠른 제품 주기, 2) 공정의 물리적 한계, 3) 수백 공정의 서로 얽힘, 4) 완전 자동화 및 장비 데이터 관리. 이것은 모바일에 의해 빠르고 넓게 얽히는 고객 집단의 파악이 힘들어진 고객 욕구와 닮아 있지 않은가? 마치 VUCA 라는 조건이 공장에도 닥쳐온 듯 하게. 우선 하나씩 살펴보자.
빠른 제품 주기는 반도체 업의 숙명과도 같다. 무어의 법칙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어 왔고, 그 시절을 버틴 집단이니까. 그런데 최근들어 체감상 더 빨라진 듯 하다. 완전 이관 후 1년이면 종산한다는 느낌이랄까. 제조로 넘어간 뒤에도 지속적인 수율 향상이 이어진다. 완전 고정된 상태는 기껏해야 일년을 채울까 싶다. 6 시그마 라는 것을 추진하려면, 평형 상태에 가까워서 조건이 고정된 통계적 집단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생산과 개발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져 고정 조건의 시간은 짧아지는 듯 하다.
이런 흐름의 이유에는 물리적 극한에서의 공정도 한 몫하는 듯 하다. 40 nm 테크부터 이미 여기가 한계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미 10 nm 대로 진입하지 않았나. 물리적인 완전한 이해가 있어서 공정이 개발된다는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시도 끝에 성공을 하게 되면 물리적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느낌? 뭐가 불안한지 계측과 검사 장비는 엄청 늘어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계측과 검사야말로 물리적 한계에 부딪쳐있다. 완전히 봐서 계측과 검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해석의 영역. 이렇게 연구소 장비로 성공했다고 양산 공장에서 수많은 장비가 모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극한의 한계치에서 개발된 공정이니, 장비간 편차도 극한으로 요구된다. 결국 연구의 완성은 양산 공장일 수 밖에 없는 것.
반도체는 수백 공정이 진행되어 제품이 생산된다. 하나의 소자 특성이나 불량이 어디에서 기인되었을까? 이것을 찾는 것도 힘들다. 그냥 웨이퍼 내의 패턴의 균일도를 잡는 것만 해도, 다수의 필름 증착, 리소 공정, 에치 공정, 클리닝 공정의 묶음이 여러번 진행되어야 패턴이 되기에, 이미 열 공정이 넘게 얽힌다. 이런 패턴들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소자가 되는데, 각 공정이 물리적 극한 조건으로 진행된다면, 불량은 어디서 온 것이라고 쉽게 맞출 수 있겠는가? 한 공정도 여러 장비가 나눠서 하고 있는데, 균일한 소자 특성을 얻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문제가 생기면 어디를 고쳐야 하는가? 모두 보면서 진행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계측도 물리적 한계에 부딪쳤다. 물론 계측은 전부 비용이고. (이상적으로는 계측은 없어야 한다)
각 공정 장비조차도 엄청 비싸고 복잡해져 있다. 최근에는 장비의 제어도 자동화되어 간다. 위의 상황에서조차 공정의 균일성을 확보하려다보니, 장비의 모든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제어하고 싶은 것이다. FDC라고 하는 신호로 엄청난 양의 장비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고 통제하려 한다. 이것을 사람이 직접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통계와 컴퓨터에 의해 분석되고 제어할 수 밖에 없으나, 위에서 이야기한 저 복잡한 상황에 각 장비의 엄청난 데이터가 모두 얽혀버린 상황이 되버린 것. 최근의 트렌드가 빅데이터에 대한 기계학습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원인 하나하나를 분석해 나간다는 것이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를 위한 제어 조건들이 필요할 뿐. 원인이 블랙박스지만 예측력은 뛰어난 딥러닝은 이것을 위해 준비된 듯도 하다.
6 시그마의 통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려던 것이었을까? 각 단위 공정으로 원인이 완전히 분해되고, 그 공정이 물리적 통제범위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통계적 유의성이 보장되는 균일한 집단이 되는 평형조건도 필요할 듯 하고. 최첨단의 현재 공장은 이런 것이 가능한 상태인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임원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것이 있다. '반도체 공장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생명체는 평형상태가 아니다. 평형은 죽어야 이룬다. 항상 변화하고 빠르게 적응한다, 자체로 최적화 되어가며.
10년은 세상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지 않던가. 강산도 바뀐다는데. 21세기이니, 당연히 엄청나지 않았겠나. 20세기의 과학적 관리법으로 합리적인 통제를 하던 시대는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시장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진 시대가 21세기의 VUCA의 조건이라면, 제조를 담당하던 공장의 현장은 어떠한가. 선형과 평형인 합리적 통제 가능한 세계의 너머에 이미 도착해 있다는 생각, 과한 것일까.
만약 공장도 비선형, 비평형 상태여서 VUCA의 상황이라면, 적합한 관리 방법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지금 공장에서도 실패에 대한 고찰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성공이 당연한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배우고. 배움의 주기 단축의 강조. 모두 안 상태에서 디자인하여 개발할 수 없으니 당연하달까. 여기까지 오니, 최근의 경영 기법에서 강조하는 조건과 닮은 듯도. 하지만 대상이 명백히 다르다. 공장이 그렇게 유연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목적도 명백히 다르다. 유연한 고객 만족이 아닌, 그럼에도 정밀한 제품의 균일한 생산이 공장의 목표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긴 이야기를 거쳐 문제에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