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버팀목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이한 불평이 들릴 때
무심함과 냉담함에 뼈만 남은 앙상한 괴로움이 밀려올 때
현실이 거절한 시한 두둑한 권리를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세월이 내려앉은 주름진 얼굴에 색 바랜 향기를 묻히고 젊음을 꾸며낼 때
삶은 답답하고 세상은 만회할 기회가 없다며 버둥거림을 웃음거리로 만들 때
소임을 다한 세간살이로 전락한 채 누구의 시선도 머물지 않는 고독에 휩싸일 때
삶을 이루는 귀한 조건들이 이리저리 뒤죽박죽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때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소재가 동이 나 가슴에서 찬바람만 불어올 때
가정이라는 울에서 이목구비의 움직임이 근본적으로 배척당할 때
자식이 버팀목이다
“얘, 이게 그렇게 성질 낼 일이니?”
아들만 만나면 아내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남편에 대한 섭섭함을 토해냅니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 ‘저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아 엄마가 말했거든”
“그런데…”
아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폐기물 취급당한 자신의 생각에
관계의 마땅한 법칙인 평등은 흔적도 없고 불평등이 관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마뜩잖게 바라보는 남편의 모욕적인 시선에
영원한 사랑과 존경의 약속이 흐릿해진다는 생각에
나이가 들수록 급격하게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이 되어 중고 취급을 받게 된다는 생각에
…
그리고 남편의 뻔뻔함에 분노합니다.
그러다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묻는 아들에게 다시 목청을 돋웁니다.
“아빠의 생각에 엄마의 생각을 보탠 것이 그렇게 잘못된 거니?”
연분홍빛 벽을 타고 위로 솟구친 아내의 하소연은 천장을 몇 바퀴 휘감아 돈 후 바닥으로 내리 꽂힙니다.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해!”
“이게 할 말이냐고”
아내는 자신의 의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뜸 소리부터 지르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 얘기라면 아예 들으려고도 안 해”
“뭐든 자기 생각대로야”
아내는 쌓아놓았던 거절의 아픔을 아낌없이 쏟아냅니다.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규범으로 여기고 자신의 욕망을 거스르는 그 어떠한 생각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남편이 영 못마땅합니다.
그때 소파에 기댔던 아들이 아내에게 슬며시 다가갑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아내의 어깨를 감쌉니다.
“…”
아내의 목소리는 금세 잦아듭니다.
시퍼렇던 눈빛도, 날카롭게 돋았던 눈매도 제자리를 찾습니다.
다 컸습니다.
관계의 영역에서 존중이나 인정은 누구나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배웁니다.
아이는 비틀어지고 찌그러진 관계를 펴고 다듬어 말끔하게 복원합니다.
아내는 아이로부터 위안을 얻고 감정의 폭풍을 잠재웁니다.
아이가 있어 부부는 정을 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