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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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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02. 2024

거짓은 우리의 감각, 지성, 감성을
마비시킨다

거짓은 사랑을 부정한다

거짓은 발각에 대한 공포와 기적을 갈망하는 미친 희망 사이에 있다.

진실을 가리는 가면의 발전에 힘입어 들통을 완전히 정복하리라는 비이성적인 확신을 품고 어린애처럼 화를 피해 가기를 갈구한다.


거짓은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창조한다는 거짓 희망을 품게 한다.

거짓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믿음이 있다.

발각의 기억이 아무리 강렬할지라도 우리는 거짓을 늘 처음처럼 즐긴다.


우리의 거짓 취향은 그동안 경험한 거짓들 덕에 더욱 풍부해진다.

거짓의 도움으로 삶을 리모델링하겠다는 눈부신 계획은 적어도 사람의 길을 벗어난 사고다.

거짓은 스스로를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아무 곳에나 처박는 일이다.     






거짓은 사랑을 부정한다     


늘 출근길에 듣던 라디오를 잠자리에서 듣는 것은 참 색다른 기쁨입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기쁨은 배가됩니다.      


오랜만에 비 내리는 휴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느긋하게 아침을 즐깁니다. 

이런 호사가 없습니다.    

 

라디오 소리에 빗소리가 섞이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모든 세포가 꿈틀댑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생길 듯 마음도 달뜹니다.    


 



“여보, 이것 쫌”     


이때 자유의 여지를 노리기라도 한 듯

기쁨에 겨운 세포를 잠재우고 달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청천벽력 같은 부름이 들립니다.

아내입니다.     


급작스런 공습에 기쁨은 숨을 멈췄고, 설렘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즐거움은 어둑해졌고 환했던 마음은 빛을 잃었습니다.     


이때 몸은 말합니다.   

  

“기쁜 이 순간을 놓치지 마”     


못 들은 척 라디오 볼륨을 높입니다. 

그리고 발까지 벗어던졌던 이불을 끌어 얼굴까지 감쌉니다.  

   

죽은 듯 숨소리를 감춥니다.     





다가오는 발소리

드디어 문이 열립니다.     


흔드는 아내의 손길에 피곤한 듯 신음을 뱉습니다.

어딘가 불편한 기색도 그럴 듯 드러냅니다.     


“그럼 더 쉬어”     


아내는 열었던 이불을 다시 덮어줍니다.     


아내가 나간 후 라디오 소리는 더 이상 즐겁지 않습니다.

빗소리도 정겨움을 잃었습니다.     


아내를 속인 기쁨보다 미안함이 더 크게 울립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소리에 마음은 더욱 무겁습니다.     


결국 아내 곁으로 갑니다.

그리고 크고 무거운 화분을 옮기고 새 흙으로 갈아줍니다.     


“더 쉬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빗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아내의 걱정, 숨죽였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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