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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20. 2024

아내의 길은 험했다

마음의 주름

아내의 길은 험했다.     


새색시 딱지도 떼기 전에

울퉁불퉁 자갈길을 만났고

겨우 빠져나오자 진 흙탕 길이 펼쳐졌다.     


아내의 길은 고됐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고 손길은 거칠었다.

이발 저 발에 짓밟힌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아무렇게나 처박혔다.     


아내의 길은 괴로웠다.


가슴엔 언제나 커다란 바위덩이가 짓누르고 있었고

불안이 걱정을 걱정은 또 다른 불안을 부르면서 삶이 통째로 흔들렸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역이었고

폭풍의 일상이었다.     


잠깐 사이에 몸은 수년을 내달려 검은빛은 흰빛으로 흰빛은 거멓게 그을렸다.     



     

마음의 주름     


방 한 칸 마련할 형편도 못 되는 가난한 남편을 만났습니다.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를 맡기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간절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꿨던 길은 단순히 꿈이었음을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멈춘 꿈을 만회하고자 더 빨리, 더 높이를 외치다 큰 시련도 겪었습니다.

삶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이의 학원도 닫혔고 학습지도 멈췄습니다. 

학원을 향하는 친구들의 발길을 바라보는 눈엔 눈물이 그렁했고 선생님 발길이 끊긴 학습지엔 아이의 눈물 자국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우유도 끊겼고 아이는 군것질하는 친구들 틈에 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의 어깨는 처졌고 발걸음마저 흔들렸습니다.

기나긴 악몽이었습니다.     


삶을 접을 고민도 여러 번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티 없는 웃음이 앞을 막았습니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눈에 밟혔습니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모진 아픔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질게 돌아서는 뒷모습에 얻은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과 아픔, 괴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불안감….

왜 그리 비틀거리는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눈도 희미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손발은 떨렸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주저앉지 않았고 어떻게든 살아보리라 끈질기게 버텼습니다.

쓰러지지 않으려, 무너지지 않으려 자신이 멈추면 곧 파멸이라는 절박감으로 아내는 몸이 부서지도록 밤낮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경건하게 지켜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고 

어둑한 앞길을 밝혀주는 아이의 눈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견디며 꿋꿋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마침내 일어섰습니다.     


시들었던 가정도 점차 생기를 찾았습니다.

그새 아이들은 훌쩍 컸고 발걸음도 야무지고 눈물 자리엔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바윗돌도 부서지고 흐렸던 표정은 맑아지고 약했던 기운도 힘이 생겼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것도

가격표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이가 내미는 손을 물리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늙음에 대한 걱정을 않을 수 있는 것도     


거칠고 모진 세상을 견딘 아내의 덕입니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마음의 주름이 활짝 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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