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발길
아내의 일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 권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내의 일은 인정하면서 부인된다.
아내의 일은 매일 조금씩 그 자격을 잃어간다.
아내의 일은 땀을 공감하게 하지만 땀을 눈물로 만들기도 한다.
오늘 아내의 일은 내일에는 구닥다리가 되고 만다.
그렇게
아내가 품은 ‘일’이라는 인간의 조건은 여기저기 금이 갔고
성장을 맹신했던 아내의 일은 결국 그대로 늙는다.
세월이 지나면 아내의 일은 귀찮은 거머리처럼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아내의 발길
이런 직업 상상할 수 있을지요.
보수도 없습니다.
기본급에 각종 수당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승진도 없습니다.
승진은 고사하고 자식마저 상사가 되어 아내의 직급은 바닥입니다.
복지도 없습니다.
복지는커녕 때마다 입을 변변한 옷 한 벌 없습니다.
기준 근로시간도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숨조차 힘겹습니다.
이건 또 어떤가요.
보상도 없습니다.
보상은커녕 사랑, 존중, 배려, 감사… 혼인서약조차 부서진 지 오랩니다.
거짓 희망만 품게 할 뿐입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아내의 일은 가족의 추락으로 여겨졌습니다.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의미도 찾기 어렵습니다.
아내의 일은 끔찍하게도 값없음을 앞세웠습니다.
의미는 서서히 보이지 않게 물러납니다.
관계도 흐트러졌습니다.
아내의 일은 주변인들을 갈라놓는다는 지탄을 받았습니다.
관계 사이에 검붉은 깊은 골이 파였습니다.
아내의 일은 간데없고 너덜너덜해진 삶만 남았습니다.
아내,
극한직업입니다.
아내가 환한 초저녁에 곯아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아내는 자신의 선택에 안도할까요.
아니면 땅을 치고 후회할까요.
남편의 눈길과 말길 그리고 손길에 달렸습니다.
아내의 기진한 숨소리가 깊은 잠에 빠진 나의 양심을 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