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어제
“늙는다는 것은 서서히 보이지 않게 물러나는 것”
괴테의 말이다.
나이가 가끔은 무서운 판결처럼 느껴진다.
하지 말라는
할 수 없다는
그만두라는
포기하라는
앉아 있으라는
내려놓으라는
물러남,
노년의 길일까?
아내의 어제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아내의 앨범을 발견했습니다.
누렇게 바랜 표지는 고장 난 문짝처럼 앞뒤로 흔들거렸고 모서리에 묻은 먼지는 눈길 없었던 그간의 처지를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하늘하늘 피어올랐습니다.
흐물거리는 표지를 들췄으나 어둠이 익숙해서일까 앨범은 쉽사리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조심스레 펼쳐진 앨범은 첫 장은 둘째 장에 둘째는 또 셋째에 의지해 함께 들썩였습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낸 앨범 속에는 아내의 젊음이 있었습니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에서도 아내의 파란 시절은 여전했고 미소는 하얗게 빛났습니다.
한점 흐트러짐도 없는 차렷 자세 속에는 앞날에 대한 각오가 풍깁니다.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누군가와 한 몸이 된 사진은 기운이 넘칩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밝히기라도 하려는 걸까 한 무리의 환한 웃음은 숱한 세월 속에서도 여전합니다.
한참을 뒤적이다 조용히 덮었습니다.
아내가 의자에 기댄 채 잠이 들었습니다.
거친 호흡을 내뿜는 아내를 한참 바라봅니다.
앨범 속 아내의 모습이 거칠게 겹쳐 지납니다.
호탕하게 웃어대던 아내의 웃음소리가 아득합니다.
젊음은 언제 있었나 싶습니다.
꿈은 거친 일상에 묻힌 지 오래입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아내의 어제가 안쓰럽습니다.
아내의 늙음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
힘겨움을 토해내는 가쁜 호흡에 배 위에 걸친 아내의 손이 들썩입니다.
아내의 손에 손을 포갭니다.
아내의 삶
아내라는 이름에 묻힌 것은 아닌지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가라앉은 것은 아닌지
흐르는 세월 속에서 빛을 잃은 것은 아닌지
호탕한 웃음을 지운 죗값을
맑고 밝은 젊음에 거친 주름을 지운 대가를
부푼 꿈을 꺼트린 값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