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또 있다
내겐 ‘없음’이 많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능력,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미라처럼 삭막해진 삶을 뒤엎고 싶다는 패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에 대한 호기심, 자동성에 굴복해 반복하던 행동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세상을 바라보는 순결한 눈 새로운 세상을 놀라워하는 능력….
뿐만 아니다.
‘선뜻’이 없다.
씩씩하게 살고 싶은데
비위 좋게 넉살을 피우고 싶은데
소소한 장점이라도 발견하면 그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싶은데
다정한 마음을 나눌 대상을 넓히고 싶은데
분노의 감정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을 벗고 싶은데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자신감 있게 결정하고 싶은데
…
언제나‘싶을 뿐’이다.
어찌 유약한 마음의 틀에 유폐되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단 말인가.
없는 것 또 있다.
‘끈기가 없다’
근력을 높여야 된다는 조언에 따라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했습니다. 몇 개월 열심히 하면 근력을 높이고 불필요한 지방을 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부서지는 데는 채 2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며 이곳저곳을 뒤져 그럴듯한 교재를 샀습니다. 초급, 중급… 며칠만 지나면 절로 원하는 말이 술술 나올 것 같은 이름을 단 책들입니다. 그러나 기세 좋게 샀다는 기억만 아물거릴 뿐 여타 책들 틈에 끼어 어디론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행동력이 없다’
기계적인 삶이 혐오스럽다며 어떻게든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이러저러한 공모전도 기웃대고, 별별 단체의 공고문도 열심히 뒤적이지만 하루를 때우는 형식상 절차일 뿐 삶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올해는…’,‘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살겠노라며 무너지는 인간 조건을 부여잡고자 매일 마음을 다집니다. 다부지고 화려합니다. 읽고, 쓰고, 보고, 듣고, 배우고… 세월을 비극적으로 만들지 않으려 다짐에 다짐을 얹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동그라미 처진 계획 없이 억지다짐 흥분으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친구가 없다’
혼자 걷고, 혼자 보고, 혼자 듣고, 혼자 먹습니다. 혼자여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혼자가 익숙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친구 없음을 실패처럼 여깁니다. 친구 없음을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함께’는 그 자체로 무척 고된 노동이라며 ‘굳이’를 외치지만 아내의 귀에는 삶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비이성적 지껄임일 뿐입니다.
아내는 언제나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고 혼자는 벗어나야 할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친구는 잘하는 일이 다르니 상쇄가 아닌 상보로 나아갈 수 있다며 ‘밖’을 은근히 부추기기도 합니다. 친구 없음은 노쇠에 빈곤이 덮친 격이고 스스로 권태의 사막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며 위협의 강도를 높이지만 혼자를 벗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집중력이 없다”
옷장 정리를 이유로 옷장을 뒤적이다가 입었던 기억이 아물 한 옷 주머니에서 색 바랜 열차표를 발견하고는 추억에 젖어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책을 찾으려 책꽂이를 뒤지다 우연히 뽑아 든 책에서 발견한 메모를 읽으며 시간을 다 써버리고 구석에 대충 쌓아놓은 박스 안에서 발견한 색 바랜 수첩을 주워 들고 이 사람을 만나고 저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뒤로 돌립니다.
“두부는?”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밖에 나갔던 이유를 알고 다시 집을 나섭니다. 문구점을 가던 중 길가에 펼쳐놓은 노점상에서 발길이 멎고, 마트에 가던 발길은 새로 문을 연 빵집으로 빠져들고, 어깨가 쑤신다며 한의원을 가던 몸은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의 이야기로 결국 잊힙니다.
그래도 내겐 아내가 있습니다.
없는 것 투성이인 내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기척만 느껴도 뭔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래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