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없는 사이
우리 인생에
행복을 초대하려면 ‘그’와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
좋은 사이는 삶의 확장이다.
넓은 사이는 소외다.
사이가 넓으면 ‘그’와 ‘나’ 사이에 빗장이 채워지고 삶은 축소된다.
사이가 넓어지면
‘그’는 사라지고 ‘나’는 시름시름 죽어간다.
* * *
우리는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 그래서 사이를 벌릴 필요가 없는 관계가 그래서 중요하다.
욕망의 대상이 아닌 관계
필요로 포장된 관계가 아닌 진짜 인간으로서의 관계가 필요하다.
진짜 관계는 영혼을 옭아매지 않는다.
서로를 자유롭게 한다.
좋은 관계는
슬픔과 고통이 깃든 일상에 찬란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삶을 변화시킨다.
허물없는 사이
아내에겐 특별한 친구가 있습니다.
하늘만 빼꼼한 파란 동네에 사는 영희입니다.
영희는 아내가 속을 드러낼 수 있는 참 친구입니다.
둘 사이엔 허물이 없습니다.
격식도 체면도 끼어들지 못합니다.
영희에게는 깊은 편안함이 있습니다.
아내가 영희를 찾는 이유입니다.
영희를 떠올리기만 해도 들끓던 마음이 이내 수그러들고 온갖 분노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춥니다.
세상의 번잡함을 벗은 시골에 자발적으로 유폐되어 일과 명상에 몰두해서일까요.
영희의 마음은 한없이 맑고 깨끗합니다.
필요를 말하는 친구에게 창고를 활짝 열어젖히는 그녀의 손길에서 수도자의 넉넉함을 봅니다.
영희는 찾아온 이를 반입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몫을 챙기기 바쁜 세상에 영희는 오히려 나누고 베풀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쉼 없이 외칩니다.
“더! 더 먹고, 더 가져가”
영희는 찾아온 이의 배를 불리고 손을 가득 채워야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영희네를 나설 때마나 아내의 품은 언제나 정이 한아름입니다.
마치 친정집을 다녀가는 듯 풍요롭습니다.
* * *
아내의 친정은 짧았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에 처가 나들이는 오래전 기억처럼 희미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내는 영희네 가는 걸 유난히 좋아합니다.
영희네 대문은 곧 친정집 대문이 되고
영희가 내어주는 정은 친정어머니의 정이 되며
영희와의 이야기는 마음껏 풀어내는 친정집 수다가 됩니다.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마음껏 발 뻗고
묻어 두었던 온갖 감정 쏟아내고
이런저런 일들을 늘어놓고 이 사람 저 사람 호출해 이리저리 품평할 수 있을까.
* * *
영희와 아내의 거리는 언제나 좁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설 수 없습니다.
이 깊고 좁은 거리가 바로 두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삶의 피곤이 밀려올 때마다
기댈 언덕이 있는 아내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