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받은 보상은 ‘리모컨 독차지’
나이 듦에서
새 공간은
두려움을 만나는 일이고 불안함을 마음에 지우는 일이다.
새 공간의 냄새, 소리, 빛 모두 내 편이 아닌 듯 어색하다.
새 공간은
도전과제를 마주하는 일이고 역경을 만나는 일이다.
새 공간의 색깔, 촉감, 크기 모두 손끝 발끝을 긴장시킨다.
새 공간은
삶이 제공하는 최선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짓누른다.
나이 듦이
새 공간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아내가 받은 보상은 ‘리모컨 독차지’
아내의 곁을 떠나던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나라를 구했나”보라고.
***
짐을 쌌습니다.
냄비에 숟가락 몇 개
이불에 납작한 베개까지
그리고
어깨엔 1월의 두꺼운 옷이 여전한 3월 어느 날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작은 트럭에 짐과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나라를 구한 아내에 대한 보상으로
아내의 삶을 성가시게 하는 몸뚱이를 아내 곁에서 빼냈습니다.
***
남편 없는 천국에서 자유를 한껏 누릴 아내와는 달리
새로운 곳은
세상의 때로 헐대로 헌 나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방은 몸뚱이를 튕겨냈고
벽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름 모를 것들마저 내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현관을 나서면
정원의 나무들은 텃세라도 부리는 듯 눈길을 외면했고 길가에 나지막한 풀들마저 나그네 취급했습니다.
***
새로 만난 공간은 인간적 소통과 교류의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힌 듯 그냥 답답했습니다.
새 공간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인간적 우대를 박탈했습니다.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그 누구의 시선도 머물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일상의 목록을 만드는 일조차 힘겨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언제든 자기가 해체될 수 있는 공간의 폭풍에 맞서야 했습니다.
***
새 공간은 삶을 원하는 대로 영위할 자유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켰습니다.
그리고 숱한 욕망의 무리를 사슬로 옭아매 서서히 시들게 했습니다.
새 공간은 새로운 삶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감금상태를 장려하는 듯 보였습니다.
밖을 향한다는 것은 짐이 되었고 자연히 짐을 벗으려 고치 속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났습니다.
이야기 있는 삶을 만들고 싶었던 의욕과 열정을 어긋나게 몰아갔습니다.
새 곳은 작고 소소한 이야기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하루하루를 옭아맸습니다.
***
새로운 곳은
나의 가치와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새 곳은 내면의 공포를 불러올 뿐입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아내에게 주어진 싱글 라이프라는 대가는
내겐 새 공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벌로 다가왔습니다.
새 공간은 장애물 투성이입니다.
무릅써야 할 위험 또한 차고 넘칩니다.
새 곳은 일상을 더 불편하고 힘겹게 만들었습니다.
새 공간은 알량한 역량을 세세한 부분까지 발휘하도록 겁박합니다.
초라한 역량은 임계점에서 쉽게 헐떡댑니다.
공간을 등지고 혼자 있고 싶은 욕망이 쉼 없이 솟구칩니다.
***
몇 주나 흘렀을까
아내의 향이 배인 햇살과 익살이 가득한 안락한 둥지가 그립습니다.
아내가 자유라는 사실을
아내가 기쁨이라는 사실을
아내 없는 공간에 서서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