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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로움’ 앞에만 서면 작아질까?

‘새로움’이 두려운 이유

by 지금

작아짐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에 고개를 젓고 아예 포기로 이끈다.


포기는 들끓는 욕구를 외면하는 일이다.


오래 살고 싶고

치열하게 살고 싶고

다시 시작하고 싶고


포기는 내일을 위한 질문을 무시하는 일이다.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인생을 잘 흘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지

피로와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포기는 새로움에 대해 싫증을 느끼는 일이다.


과학의 발달이 밀어붙이는 새로운 입장과 역할에

인생이 자연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 쫓기는듯한 속도로 내달리는 아찔함에

생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어지러움에


포기는 매 순간 변화하는 상황에 결코 너그러워질 수 없는 일이다.





‘새로움’이 두려운 이유


이건 뭐고 또 저건 뭔지

눈만 뜨면 낯선 세상이 펼쳐집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새로움이

삶을 빛나게 해 준다며 저마다 존재를 과시합니다.


그러나 빛은커녕 삶은 점점 어둠에 깊숙이 파묻힙니다.


이것 뭐고 또 저건 뭔지

그것 앞에만 서면 온몸이 굳고 마음마저 얼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요구 그것의 주문은 처음 접하는 괴이하고 야릇한 그것만의 언어일 뿐

귀에 닿는 순간 그리고 눈에 띄는 순간 그것의 요구는 온몸을 옭아매는 사슬이 됩니다.





사슬은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하면 되지, 할 수 있겠지…’


때로 친해지려 가까이 다가서지만 그때마다 그것의 억센 도도함은

일었던 야심을 다시 주저앉힙니다.


누군가에겐

신기하고 신통한 그것이

빠르고 간편한 그것이

편하고 좋은 그것이


내게만 오면

강압적인 얼굴로 매섭게 굽니다.


삶의 유익을 위한 누군가의 장한 발걸음이 사슬로 작동하는 건

기존에 짜인 행동의 올을 제대로 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삭막해지는 삶을 뒤엎을 생각도 없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자기 시대를 언짢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토마스 만의 생각을 가슴에 품고 소파 깊숙이 몸뚱이를 쑤셔 박습니다.




언제 나태의 잠에서 깨어나 일상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너무 일찍 삶을 옭아매는 것은 아닌지


언제든 한숨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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