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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거운 건
짐을 향한 피곤한 욕망 탓이다

짐이 짐이다

by 지금

이유 없는 짐은 없다.

짐마다 이런저런 구실이 달린다.


삶이 묻어있는 것이라면 요런조런 핑계를 대며

그것 만의 공간을 만든다.


틈마다 꼬질한 어린 시절을 접어놓았고

두렵고 어둑한 가슴 시린 청년 시절도 아쉬움으로 싸맸다.


첫 직장의 떨림도 간직했고

함께했던 그때 그들도 삶의 한 자리를 장식했다.


누구지 싶은 낯선이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그 시절 그 마음도 여기저기 덩어리 덩어리 맺혀있다.




짐의 피로가 삶을 덮친다.

그때를 품은 짐과의 약속은 흐릿해진다.


관건은 이것이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을, 젊음과 늙음을, 탱탱함과 주름살을, 그 시절과 이시절을.




짐이 짐이다


봄을 구실로 집 정리에 나섰습니다.

집안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이 족히 4, 5년은 된 듯싶습니다.


짐을 끌어냅니다.

방에 어쭙잖게 붙어 있는 발코니부터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막무가내로 멱살을 잡습니다.


마치 이것 때문에 삶이 어지럽고 꼬이고 힘겨운 것처럼

오늘의 아픔을 몽땅 짐에게 덧씌웁니다.


한 겹 두 겹 벗기고 한 칸 두 칸 헐 때마다 낯설고 서먹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건 뭐고 저건 또 뭔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어둑한 구석을 나와 거실을 조금씩 점령해 갔습니다.


어떤 이유 어떤 기대로 간직했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거실은 점점 침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뜯어지고 너덜거리고 해져서 당장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도 꽤나 보입니다.


마치 연명치료라도 하는 듯 이리 붙이고 저리 싸맨 물건도 다수고 사라지고 잊힐 그들의 권리를 외면한 채 뭔가 새로운 의무라도 부여하려는 듯 번듯한 박스에 가두어 놓은 물건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라도 품은 채 그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 기다렸을 물건에게 미안했습니다. 괜한 희망 고문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이따금 뭔지 모를 물건 사이에서 사연이 떠오르고 생각지도 못했던 지난날로 이끄는 물건도 눈에 띕니다.





‘이제 그만 놓아줄까?’


관계지속의 필요를 묻습니다.


오래간만에 빛이 들고 손길이 다가오자 희망에 들떴던 물건들은 이제 와서 버린다는 것이 가당키냐 하냐는 듯 따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무엇을 더 요구하느냐며 갈 길을 막지 말라는 듯 더 이상의 노동 불가를 애원하는 눈길도 느껴집니다.


물건과의 대화는 그렇게 한참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우리라던, 줄이리라던, 없애리라던 마음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뺍니다. 묵은 것이라고, 오래된 것이라고 어제의 것이라고 지난 것이라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짐에 대해 불타오르는 애착을 애써 감춥니다.


“그래, 언젠가는 필시 어딘가에 쓸 일이 있을 거야!”


과거를 버리는 건 그가 품은 시절마저 버리는 것이라는 합리화가 힘을 얻습니다. 결국 짐은 운명이라는 모양새로 욕망의 역동성안에 머무릅니다.


정리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다시 묶고 다시 싸매고 다시 붙이고 다시 접어서 다시 그 자리에 놓았습니다.


물건들의 얼굴에서 점점이 나타나는 쓰임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입니다.

그때는 물건이 주는 기쁨을 모두 즐기면서도 물건에 예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다짐도 합니다.


물건을 쌓아놓는다는 것은 물건의 미래를 약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미래가 오긴 올까요?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짐 더미는

물건을 움켜쥔 주먹을 펴지 못하는 욕망 덩이입니다.


물건 앞에만 서면 저 깊은 곳으로부터 탐심이 펄펄 끓어오릅니다.

정리는 탐심을 식히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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