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질책
들리지 않게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 소리의 소중함을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알았다.
그 모습의 사랑스러움을
‘홀로’ 떨어지고 나서야 깨우쳤다.
‘함께’의 귀함을
허둥지둥 종종거리며 동분서주
내 갈길 가느라 그것들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말을 듣지도 하지도 않았다.
놀이를 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시간이 빨리 흘러감에 따라 더욱더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천에 떴던 해가 기울고 정오의 열기가 식어가는 삶의 길목에서
잿빛 그늘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맞닥뜨린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빨리 달렸는지도 잊은 채
아무 저항도 없이 고통과 두려움을 마주한다.
세월의 흔적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수많은 고통과 두려움의 언덕이 펼쳐지는 멀고 지루한 길을 견디려면
누군가의 삶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간의 질책을 듣고 나서야 눈을 떴다.
시간의 질책
그 누구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새로울 것도 없는 그 얘기가 그 얘기라고 여겼습니다.
해서 모두가 헛소리요 의미도 가치도 없는 단순한 지껄임으로 치부했습니다.
그 누구의 움직임도 외면했습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흔하디 흔한 모습으로 간주했습니다.
해서 모두가 헛짓이요 이유도 의의도 없는 하찮은 움직임으로 폄하했습니다.
‘함께’를 바라는 숱한 손길도 거절했습니다.
이 사람과 그 사람이 마치 소포 꾸러미처럼 한 덩이 두 덩이 꾸려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해서 ‘홀로’의 삶을 흩트리는 부정한 요구로 일축했습니다.
그 소리를 무시하고 그 행동에 눈 감고 그 모임에 등 돌리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능력, 이 무심한 한가로움이야말로 살아있는 존재의 특권인 양 여겼습니다.
그러다 숱한 세월이 흐른 뒤
세월의 흔적을 보고 시간의 질책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간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이
시간에게 저항할 수 있는 에너지가
그들의 소리 그들의 움직임 그들과 함께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귀를 열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눈을 열고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홀로의 빗장을 열고 그들 곁으로 다가서렵니다.
참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이제 황폐한 ‘홀로’의 가식을 벗겨내고 남은 삶을 또 다른 삶으로 감싸야겠습니다.
생은 어떤 단계에서든 불가역성에 반발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더 가라앉기 전에 서둘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