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아주 특별한 능력

감각이 고픈 아이들은 자기 즐거움에 집중한다.

by 지금

심심함은 때로 절망이자 고통이다.

현 상태에 무감하다.

작은 공백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눈앞이 꽉 막힌다.


마치 터널 안에 갇힌 듯 출구는 보이지 않고 어둠만 길게 늘어진다.


그러나 심심함은 또 다른 자신을 깨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심심함은 감각적 공복상태다.

아이의 딴짓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본능이고 동시에

감각 충족을 위한 몸부림이다.




감각이 고픈 아이들은 자기 즐거움에 집중한다.


아이들에게 심심함은 단순한 무료함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감각적 기아’ 상태에 가깝다.

감각이 고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즐거움에 집중하며,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처절하게 움직인다.


***


어느 교실에나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독한 허기를 느끼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교실은 사방이 막힌 거대한 진공 상태와 같다.

이때 아이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 자극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떠들고 몸을 흔들고 낙서하고 장난을 치는 까닭이다.


***


소음 제조기 같은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지루함의 임계점에 다다르면 발끝을 더듬이 삼아 옆 친구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그러다 뭔가 확신이 서면 발끝에 힘을 준다. 한 눈으로는 선생의 기색을 다른 한 눈으로는 친구의 반응을 살피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치근댐을 견디다 못한 친구가 마침내 백기를 들고 화답하면 찌뿌둥하던 녀석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둘은 결국 한 몸이 된다.


이들의 움직임은 순식간에 셋으로 셋은 다시 넷으로 급속히 번진다. 소음도 증폭된다. 가늘고 굵고, 짧고 길고, 뭉툭하고 뾰족하고, 거칠고 사나운 소리들이 마치 마른 풀밭에 쥐불 번지듯 야금야금 교실 전체로 퍼진다. 녀석이 움직이면 교실이 꿈틀대고, 녀석이 입을 열면 교실이 웅웅댄다.


교단으로 향했던 시선들은 달뜨기 시작하고 선생의 목소리에 기울어졌던 귀들은 일제히 방향을 튼다.


결국 선생의 열정적인 강의는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 ‘혼자만의 놀이’로 전락한다. 단단하게 뭉쳐있던 주의력은 딴짓이라는 파편으로 흩어지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칠판을 벗어나 이리저리 떠다니고 이 소리 저 소리가 이리저리 뒤섞인다. 한순간 교실은 거친 우박에 얻어맞는 양철지붕이 되고 선생의 소리는 이내 자취를 감춘다.


***


아이들의 속닥거림은 차단된 감각을 깨우려는 절박한 시도다.

그들의 떠듦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그 아이가 처한 ‘감각적 빈곤’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의 굶주린 감각에 건강한 자극이라는 양식을 채워주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들은 몸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