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딴짓’은 질문이다
귀에 거슬리면 고개를 젓고
눈에 거슬리면 눈살을 찌푸린다.
미운 사람 앞에서는 입을 굳게 닫고
무례한 사람 앞에서는 얼굴을 붉힌다.
막말에는 깊은 한숨을, 거친 손길에는 뜨겁게 분노한다.
그것은 존재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
하지만 부당함에 대응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교실 속 아이들에게‘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이제 매너를 넘어 강요된 부당한 감정노동이 되었다.
아이의 삶을 틀어쥐고 있는 어른의 권력이 분노라는 건강한 방어기제마저 거세하고 있는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밖으로 터뜨리지 못한 분노는 안으로 침잠해 무기력이라는 늪을 만든다. 그렇게 굴절된 저항은 교실 안에서 기묘하고도 고요한 ‘딴짓’의 형태로 발현된다.
아이들의‘딴짓’은 질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을 들어서자마자 정선생은 책상 위로 교과서를 팽개치며 거칠게 울분을 쏟아낸다.
“퍼질러 자는 놈, 아예 책을 덮고 멍하게 앉아 있는 놈, 교과서는 어디에 처박았는지 소설책을 끼고 있는 놈, 만화에 음악까지…아휴 정말!”
참다못해 한마디 하면 이마에 잔뜩 힘을 주고 입은 댓 발 내민 채‘너는 지껄여라’식이라며 정선생은 의자에 몸을 던진다.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이제 정말 못 해 먹겠어!”라는 그의 탄식은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어른의 절망과도 같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요즘 교실 곳곳에 위태로운 경고등이 켜졌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한다.
***
그렇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만의 공간을 꾸미고 저만의 시간을 보낸다. 잠자리를 만들고, 엉뚱한 책을 펼치고 가당찮은 광경으로 교실을 어지럽힌다. 교사의 눈을 맞추고 요구에 응하는 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귀하다.
우리는 아이들의 딴짓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수업이 재미없다는 투정이 아니다. 화를 낼 권리조차 잃어버린 아이들이, 무력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방어기제다. 공부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신을 좀 봐 달라는, 살려달라는 소리 없는 구조신호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수업이 내 삶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나의 잠재력을 깨우고 나를 성장시키는데 정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말이다.
아이들의 몸짓을‘무례’로 규정짓는 것은 가장 쉬운 회피다. 우리는 그 몸짓 너머의 갈증을 살펴야 한다. 정선생의 화와 아이들의 딴짓이 평행선을 달리는 까닭은 우리가 그들의 날 선 질문에 성실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단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무례함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은 채 완전히 입을 닫아 버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