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는
만남에 있다

아쉬운 일

by 지금

모든 것의 가치는 만남에 있다.


모든 것의 가치는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세상 모든 존재의 가치는 누군가의 눈길이 머물 때, 듣는 귀가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누군가의 발길이 찾고 손길이 닿을 때, 미각과 촉각이 동원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고, 선한 그 무엇이 있다 해도 눈길이 닿지 않으면 그것의 가치는 있으나 없다.


세상에 홀로 있어도 좋은 존재는 없다.

무엇이든 그 무엇, 그 누구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 무엇, 그 누구를 필요로 한다.


세상 존재의 가치는 만남에서 드러난다.


존재의 가치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어떤 이유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만남 없는 존재는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아쉬운 일


작은 바람에도 나뭇잎이 움찔하던 어느 날, 더부룩한 속을 달랠 겸 현관을 나섰다. 몇 발짝이나 떼었을까 토닥토닥 아이들의 발길이 다가섰다.


“저희도 같이 가요.”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디를 가는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리곤 점심 메뉴 품평부터 오후 수업 걱정, 몇 주 후에 있을 시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자랑까지 주제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아이들은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해도 해도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의 이야기뿐 아니다. 어제의 일도 꺼내고 내일의 일도 끌어온다. 친구나 가족 그리고 선생도 좋은 이야기 소재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숨을 쉰다. 수업의 짓눌림도, 가슴에 묻었던 걱정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세심히 듣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또 다른 물음을 부른다. 이야기는 짧은 시간 자칫 빈곤했을 산책길을 풍성하게 만든다. 서넛의 발걸음은 그리고 서넛의 이야기는 수십 명이 제창하는 떠들썩한 축제가 된다.


이보다 즐거운 길이 있을까?

이보다 흥겨운 마음이 있을까?

이보다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돌아보면, 아이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스스로를 교무실에 가둔 채 아이들과의 사이에 두터운 벽을 쌓고 지낸 세월이 검게 지워진다. 아이들의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 틈에서 그들의 친구로 지내지 못한 것에 몸이 떨린다.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채 남이 되어 보낸 시간이 속상하다. 시끄럽고 어수선하고 번잡스럽고.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을 외면했던 시간들이 슬프고 아깝다.


선생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욕구를 버려둔 채 달려온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이들의 푸른 시간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장을 꾹 움켜쥔다.

선생의 가치는 선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의 만남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는지.


돌아오지 않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돌아오지 않는 선생,

슬프다. 애석하고 서럽다. 뜨거운 애통함이 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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