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머무는 것은 기적이다.

또 자퇴

by 지금

학교에 머무는 십수 년,

아이들은 자신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행여 그 많고 많은 세월,

어른의 뜻으로 어른이 원하는 어른의 아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자퇴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자신을 찾기 위한 싸움은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삶을 살려는 발버둥은 아닐까


자퇴의 발길에는

학교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리고 어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교문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에 기쁨과 행복을 맛볼 것이라 말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 소소한 기쁨과 웃음 그리고 감동을 줘라.


그게 아이를 위하는 일이다.






또 자퇴


이젠 익숙하다.

‘자퇴’어색했고, 서먹했다. 그러나 낯섦을 지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는 언제나 희망을 말한다. 꿈을 지니란다. 때가 있다며 놓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고생 끝, 낙을 외치며 고통도 덤으로 얹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꿈을 찾아 학교를 나선다. 가능성을 찾아 교문을 나선다. 학교에는 꿈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교문 밖에서 미래를 비춰줄 빛을 찾는다.


학교는 어둡다. 꿈을 밝혀줄 빛 한 점 들지 않는다. 온 사방이 까맣고 아득하다. 자신조차 알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학교에서 꿈 찾기, 꿈같은 이야기다.


선생과 학교의 명예만을 위하면서 입으로만 아이를 위한 교육, 아이를 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아이의 꿈은 자신의 흉한 마음을 순수한 양 치장하는 장식일 뿐이다.


아이를 목적으로 삼으며 실천하는 사람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이를 위한 교육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성공하며 교육을 이끌어가길 바라는 것은 꿈일까.


자퇴,

아이는 학교가 아니라 권위적이고 포악한 나쁜 선생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아이를 위한다면서 아이의 자유와 권리를 외면한 이들을 벗어나려는 것은 아닌지, 억지 옷에 무리한 시간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주어지는 과한 과제로부터의 해방을 꾀하는 것은 아닌지.


자퇴,

아이가 거짓 가면을 벗고 참모습을 찾아 나서는 일은 아닌지, 진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그 어느 곳을 향한 발길은 아닌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픈 소박하지만 절실한 마음의 움직임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가 얻어낸 작은 승리는 아닌지.


학교를 벗어나는 발길에서, 하나, 둘 늘어나는 빈자리에서, 새벽부터 학교를 찾아야 할 이유, 학교에 머물러야 할 이유,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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