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지배하는 이치는
아이의 '요구'다

교과목은 억지 먹이이다

by 지금

교육은

아이에게 아이 자신을 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보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합니다.


그래서 절실히 주의를 기울여 자신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은 아이들의 내면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만을 비추고 어른만을 보고 듣도록 강요하는 것은 모진 고통을 불사하면서까지 걷고자 하는 교육의 길에 온갖 장애물을 설치하는 일입니다.



교과목은 억지 먹이이다


“다음 시간 뭐니?”


수업 끝 종이 울리기 무섭게, 애들은 습관적으로 서로에게 다음 시간을 묻는다. 지겨운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 한 시름 놓았다는 투다. 교과서를 챙기고 돌아서는 뒤통수가 뜨겁다. 시름을 안기는 선생이었다니, 서글픔이 밀려온다.


애들이 다음 시간을 몰라서 물을까?

그럴 리가!


다음 시간은 넘어야 할 또 다른 언덕이고, 건너야 할 또 다른 강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수업은 거추장스러운 짐이고, 고통을 안겨주는 험한 과업이다. 반갑고 기다려지기는커녕 해치워야 하는 성가시고, 귀찮고, 힘겹고, 고단한 일이다.


하나의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면 이제 좀 편안한 길이 나올 법도 한데,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버티고, 강을 건너면 또 다른 강이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애들에게 수업은 지겨움이다.


왤까?


수업은 억지 먹이를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 과정은 먹일 목록과 양 그리고 일정이고, 교과목은 무수히 많은 먹이 중 하나이며, 시간표는 그날의 먹이표다. 선생은 그 시간의 먹이를 들고 들락인다. 이 과정에서 애들의 체질, 애들의 건강, 애들의 취향이나 입맛쯤은 가볍게 무시된다. 억지는 학대다. 억지공부는 자기 학대를 부추기는 일이다.


애들이 먹기를 거부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최신식 기기를 활용하고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몸에 좋은 내용으로 꾸민 식단이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고 괴로운 것은 그것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고,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과 무관하며 자신의 흥미와 적성 그리고 능력을 키우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지는 행위가 어른이 원하는 일꾼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꿈과 능력과 흥미와 적성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어른의 꿈을 심는 작업은 아닌지. 어른의 입맛이 아닌, 어른이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닌, 어른의 생각이 아닌, 아이의 입맛에 맞고 아이가 보기에 좋고 아이의 생각과 능력과 흥미를 배려한 식단 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어쩌다 자신을 찾고 성장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의 길이 모진 고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슬픔의 길이 된 것일까, 하고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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