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은 생존전략이다.

학교 알바

by 지금

부당함을 안다.

옳지 않음도 잘 안다.

공정하지 않음도, 형평에 어긋남도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는다. 거짓 웃음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환호한다. 억지 환호다.

아이들에게 거짓은 일상이다.

교문에만 들어서면 그들은 가면을 쓴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왤까?


혹여 교사가 쥐고 있는 권력의 산물은 아닐까.




학교 알바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전단지 배포, 카페, 화장품점, 주유소, 주위를 돌아보면 교실이 아닌 곳에서, 선생이 아닌 이들과, 책이 아닌 것을 들고 씨름하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이제 청소년에게 알바는 일상이다.


알바는 절박함의 징표다. 교실도, 책도 뒤로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있다. 꿈도 미룬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기한 없는 유예다. 아이들의 소망은 자연스럽게 감금된다. 알바는 현실이다. 피할 수도, 그만둘 수도, 그만두어서도 안 된다. 알바를 벗는 순간 그나마 붙어있던 꿈의 생명마저 끊어진다. 알바를 벗을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의 일터에는 이들의 처지를 교묘히 활용하는 사업장의 간사함이 있다. 부당한 대우가 일상이다. 인권침해도 빈번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견딘다. 청소년의 노동 현장은 “욕먹고 일하는 곳”이라는 푸념이 끊이지 않는다.


“생기부가 생사를 결정하잖아요.”


선생이 돌아서면 투덜대면서도 선생 앞에서는 안색을 바꾸는 아이들이 내놓는 이유다. 부당한 대우에도 눈감고, 폭언과 비난, 비하와 모욕도 그러려니 넘긴다. 개인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되고,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도 내 탓이려니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인다.


아픔과 고통이 일상이지만 늘 없는 일처럼 치부된다. 아이들이 받는 대우가 정당한지, 부당교육 행위는 없는지 살피는 일은 언제나 뒷전이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업장 아르바이트생과 교실 속 아이들의 처지가 묘하게 겹친다.


아이들의 아픔을 더해야만 운영되는 학교는 그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한다. 억울하고 분해서 마음이 괴롭고 쓰려도 그것은 대학을 대가로 치러야 할 아이들의 당연한 몫으로 쳐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생기부에 한 자, 한 문장이라도 더 나은 내용의 기록에 대한 기대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학에 대한 꿈이 밟히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한 눈 감고, 한 귀 닫고 아이들은 오늘도‘대학을 벌기 위해’ 학교 알바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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