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길
아이가 어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떼어놓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뜻을 품고, 다양한 향을 풍기며, 다양한 마음으로, 다양한 짐을 지고, 다양한 빛깔로, 다양한 표정으로... 모인 아이가 걸음을 반복할수록 아이 본래의 뜻과 향 그리고 빛과 표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른의 뜻과 향이 차지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어른의 꿈을 품고, 어른의 마음으로, 어른의 뜻을 한 짐 짊어진 채 너나없이 하나가 되어 한 길을 걷습니다.
하나의 길
가을비가 추적거리던 어느 날, 몇 년 전 졸업한 서 군이 인사차 들렀다며 교무실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뻔한 안부를 주고받은 후, 요즘‘하는 일’로 자연스레 화제가 옮겨갔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니?”
“전공이 아니잖아”
“그렇죠.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죠.”
“그런데, 어떻게!”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기회가 돼서, 그런데 정말 재미있고 제 적성에 맞아요.”
서 군은 이 길을 선택한 자신을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대학은 누구나 가야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굳이….”
대학을 위해 투자한 시간의 의미를 자문하는 그의 눈빛엔 아쉬움이 역력했다. 대학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걸을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갇혀 지낸 수년의 시간을 안타까워했다.
“뭐, 결국 대학 진학은 제가 선택한 것이라서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대학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서 군은 다른 길을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대학만이 유일하고 당연한 길이었다. 서 군뿐 아니다. 많은 아이가 대학으로 향한 길만 바라보고 대학으로 향한다. 아니 주변에서 그렇게 몰아간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물론 주변의 모든 이들이‘대학’,‘대학’하니까 그 길만이 답인 줄 알았던 거죠.”
아이들은 어른이 제시한 길을 진짜로 여긴다. 모든 이들이 믿어주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 되는 이른바 대안적 사실에 익숙해지면 가짜가 진짜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른 길을 가린 채 오직 대학만을 유일한 길로 제시하고 아이들의 시선을 고정해 놓고 목동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듯 아이가 아닌 어른이 원하는 곳으로 아이를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무실을 나서는 서 군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